국내외 과학자들, 각국 정상에 성명서 전달
바이오매스···탄소중립과 생물 다양성에 악영향
韓·日, 바이오매스 보조금 지급 중단해야

[이넷뉴스] 국내외 저명한 과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이 한국,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정상에게 에너지 생산을 위한 목재 바이오매스 활용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보냈다. 국내에서는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포함하여 생태, 기후, 경제, 경영 분야 다수의 학자가 참여했다.

 

◇바이오매스 발전이 지구온난화 부추겨

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은 “500여 명의 과학자가 공동으로 문재인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샤를 미셸 유럽 이사회 의장에게 지난 21일 성명서를 보냈다”고 밝혔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발표한 야심 찬 목표와 관련하여 찬사의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에너지 발전을 위해 화석연료에서 나무를 태우는 것으로 전환함으로써 기후 목표와 세계의 생물 다양성 모두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원목을 베어내거나 나무줄기의 상당 부분을 바이오에너지로 전환함으로써 숲에 포집되어 있을 탄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하는 잘못된 동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공동으로 청와대로 보낸 성명서 (사진=기후솔루션)
전 세계 과학자들이 공동으로 청와대로 보낸 성명서 (사진=기후솔루션)

지난여름 폭염과 최장기간 장마에 이어 올해 초 이례적인 한파에 이르기까지 이상기후는 이제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향후 수십 년 동안 더 많은 산불과 해수면 상승, 폭염을 통한 직접적인 피해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앞으로 수십 년간 빙하가 더 빠르게 녹고 영구동토층이 해빙되며, 세계 바다의 온도와 산성도가 증가해 영구적인 피해를 보게 된다. 지금부터 수십 년 동안 탄소를 제거하더라도 이러한 피해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많은 선행연구가 나무를 태우는 것이 수십 년에서 수 세기 동안 지구온난화를 증가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바이오매스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 이중적인 기후 문제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 기업들이 화석 에너지 대신 목재로 전환함으로써, 실제로 온난화를 감소시키는 태양광과 풍력으로의 전환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 일본과 프랑스령 기아나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전기를 위해 나무를 태우는 것뿐만 아니라, 야자기름이나 콩기름 또한 태우자고 하는 정책적 제안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로 인해 야자 또는 콩 생산의 증진이 요구되면, 탄소 밀도가 높은 열대 우림의 벌목과 중요한 탄소흡수원의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목재에서 에너지의 2%만 추가로 공급한다고 해도 상업적 벌목량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 유럽의 바이오에너지 증가가 이미 유럽 지역의 산림 벌목량을 현저히 증가시켰다는 유력한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인정된 산림 협약의 목표를 훼손하지 않도록 정부는 자국의 나무 또는 해외로부터 수입된 나무를 태우는 것에 대한 기존 보조금과 기타 정책적 유인책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별로 “EU는 재생에너지 표준과 배출권거래제에서 바이오매스의 연소를 탄소중립으로 취급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한국과 일본은 목재를 태우는 발전소에 대한 보조금의 지급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미국은 새로운 행정부가 기후 규칙을 만들고 지구온난화를 줄이기 위한 정책적 유인책을 마련하고, 바이오매스를 탄소중립 또는 저탄소로 취급하는 것을 지양해 달라”고 요청했다.

 

◇끊이지 않는 바이오매스 친환경성 논란

현행 법률과 정부 규정에 따라 바이오매스는 신재생에너지로 분류돼있지만, 생산·소비과정에서 산림파괴와 온실가스 배출을 부추긴다는 논란은 계속 야기되어 왔다.

바이오매스에는 공사 후 남은 폐목재 및 폐목재를 잘게 쪼갠 우드칩, 톱밥 등 나무 가공에서 나온 재료를 모아 다져 압축한 목재 펠릿(pellet), 바이오 고형연료(bio-SRF) 등이 포함된다. 친환경이라는 인식이 강해 산림청이 나서서 만드는 상품이기도 하며, 산림청에서 남은 목재를 활용해 목재 펠릿 등을 만드는 기업도 많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프린스 조지에서 바이오매스 생산을 위해 천연림을 벌목한 현장 사진. 한국도 캐나다산 목재 펠릿을 매년 수입하고 있다. (사진=기후솔루션, ⓒConservation North)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프린스 조지에서 바이오매스 생산을 위해 천연림을 벌목한 현장 사진. 한국도 캐나다산 목재 펠릿을 매년 수입하고 있다. (사진=기후솔루션, ⓒConservation North)

현재 온실가스 산정지침에서 석탄·가스발전의 온실가스 배출량에는 이산화탄소 등 모든 종류의 온실가스를 포함하지만, 바이오매스발전 시에는 이산화탄소를 제외하고 있다.

기후솔루션이 목재 펠릿 전소 발전소인 영동 1호기에 사용된 실제 바이오매스 성상 자료(탄소 함량 49%, 함수율 8% 전제)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영동 1호기의 1MWh당 온실가스 배출량(이산화탄소만 산정)은 2019년 기준 약 0.86t이었다. 이는 같은 해 LNG 발전소인 인천복합발전이 배출한 1MWh당 0.41t보다 2배가량 높은 수치다.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이 한국남동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영동 1호기는 2019년 총 62t의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했다. 1MWh당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은 0.571kg, 미세먼지(PM2.5) 배출량은 0.074kg이었다.

같은 기간 석탄화력발전소인 영흥 화력 5·6호기는 1MWh당 대기오염물질 0.131kg, 미세먼지는 0.030kg을 내보냈다. ‘바이오매스는 친환경적이다’는 인식과 달리 화석연료 발전보다도 더 많은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한 것이다.

성명서에서 과학자들은 “나무를 태우는 것이 탄소 효율이 낮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같은 양의 열이나 전기를 생산할 때, 초기에 목재를 사용하면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것보다 두세 배 많은 탄소가 공기 중으로 배출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목재를 벌목해 연소할 경우, “일반적으로 목재의 절반 이상은 에너지를 공급하기 전에 벌목과 가공 과정에서 손실되어 화석연료를 대체하지 못한 채 대기에 탄소를 더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과학자들은 “추가적인 벌목의 결과로서 초기 탄소 배출량이 대폭 증가해 ‘탄소 부채(carbon debt)’가 발생하며, 지속적인 바이오에너지의 사용을 위해 더 많은 벌목이 이뤄지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탄소 부채는 더 증가한다”고 말했다. 물론 나무를 다시 키우고 화석연료도 대체한다면 결국 이러한 탄소 부채를 갚을 수 있겠지만, 나무가 다시 자라는 데에는 세계가 기후 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환경단체, 재생에너지 정책 개선 요구

기후솔루션이 환경운동연합, 공익법센터 어필과 지난 24일 공동 개최한 ‘아시아 바이오에너지 무역과 공급망 리스크에 대한 이해’ 세미나에 따르면, 우리나라 바이오매스 발전은 지난 6년간 61배 이상 빠르게 성장했다.

바이오에너지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발급량에서 재생에너지원 가운데 1위를 차지했고, 2018년과 2019년에도 2위를 기록했다. 팜유를 기반으로 하는 바이오중유 생산 역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약 3배 증가했다.

재생에너지원의 연도별 REC 발급률. 바이오에너지, 태양 및 풍력 에너지 이외의 재생에너지원은 제외한다. (출처=기후솔루션, 자료원=산업통상자원부)
재생에너지원의 연도별 REC 발급률. 바이오에너지, 태양 및 풍력 에너지 이외의 재생에너지원은 제외한다. (출처=기후솔루션, 자료원=산업통상자원부)

‘한국 바이오에너지 무역과 생산자의 공급망 위험요소 개괄’을 발제한 김수진 기후솔루션 선임연구원은 “2050 넷제로 목표 달성을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확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바이오에너지 의존도가 늘어나는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바이오디젤이나 바이오중유와 같은 수입산 팜유 계열의 연료들의 탄소발자국은 더욱 큰데도, 정부는 계속해서 REC 가중치를 부여해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오에너지 개발 증가에 따라 원료의 수입 의존도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현재 목재 펠릿의 경우 베트남 등지에서 90% 이상을, 팜종실껍질(PKS) bio-SRF 및 바이오 연료의 경우 60% 이상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특히 바이오 연료의 주원료인 팜유는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환경파괴 및 인권침해 문제로 국내외 시민사회로부터 오랫동안 비판받아왔다.

이날 행사에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미국, 유럽 소재 시민단체도 온라인으로 참석해 바이오에너지 원료의 생산 및 소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사회 문제를 조명하고, 각국의 사례와 시사점을 공유했다.

EU의 재생에너지 정책 또한 바이오에너지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EU 재생에너지의 최대 37%를 차지하는 바이오매스는 유럽 및 북미 지역 벌목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2016년에서 2018년까지 유럽 전역의 벌채된 산림 면적은 2011년에서 2015년 대비 49% 증가하였고, 바이오매스 손실도 60% 증가했다.

우리나라 역시 미국, 캐나다로부터 수입하는 목재 펠릿의 양이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중 몇몇 곳이 멸종위기종 서식지라는 조사 결과가 밝혀지면서, 공급망 리스크 문제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EU의 바이오매스 및 바이오 연료 무역과 공급망 위험요소에 대한 정책적 이해’ 발표를 맡은 바이오퓨엘 와치(Biofuel Watch)의 알머스 언스팅(Almuth Ernsting) 연구활동가는 “바이오에너지에 의한 대규모 기후, 환경 및 사회적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들을 재생에너지 및 기타 ‘녹색’ 정책에서 제외하고,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오는 6월 REC 가중치 개정 공표를 앞두고 있다.

 

[이넷뉴스=정민아 기자] comte@e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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