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과 실리를 얻은 두 회사
거부권 딜레마에 빠졌던 바이든 행정부의 적극적 중재
[이넷뉴스] 2년을 끌어온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영업비밀침해 분쟁이 결국 2조 원대 합의금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각 회사가 예전처럼 배터리만 만들면 되는 상황으로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두 회사가 입은 피해는 수치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렇다면 LG는 그동안 입은 피해를 만회할 정도의 합의금을 받은 걸까? SK는 거액의 합의금을 감수할 이유가 있었을까? 이번 LG와 SK의 합의 과정에서 드러난 양사의 이해관계와 이해 당사자이기도 했던 미국의 입장을 알아본다.

◇ 실리와 명분은 누가 더 챙겼을까?
결론적으로 두 회사 모두 실리와 명분을 챙겼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급한 건 SK이노베이션이었다. LG에너지솔루션으로부터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소송이 제기되었고 ITC로부터는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최종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이 결정으로 인해 SK이노베이션은 앞으로 10년간 배터리 관련 부품 수입금지라는 위기에 놓였었다.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밖에 길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만약 LG에너지솔루션과 합의하지 않는다면.
관계자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 고위 관계자가 지난주 SK이노베이션 배터리공장이 있는 미국 조지아주에 체류하고 있었다. 바이든 정부와 조지아주 정치권과 막후 접촉을 취하며 조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를 점쳐보는 의도였을 것이라고.
결국, 바이든의 거부권 행사가 어렵다는 걸 알게 되자 LG 측과의 협상은 급물살 탄 것으로 보인다. 거부권 행사 시한을 앞둔 촉박한 상황이라 최종 협상은 화상회의로 진행되었다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2조원이라는 합의금 수준도 화제가 되었다. 애초 LG에너지솔루션이 4조원에서 5조원의 합의금을 요구했다는 말이 흘러나왔었다. 최종 합의된 금액으로만 보면 LG 측이 많이 양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LG 측은 실리를 챙기는 걸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현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LG화학이 과거 발표한 사업계획에 따르면 배터리 부분에서만 매년 3조원 정도 들어가는 사업을 계획했다. 그래서 LG화학은 배터리 사업 부분을 따로 떼어 LG에너지솔루션으로 상장했다. 상장을 통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LG 에너지솔루션은 이번 합의금으로 현금을 확보하게 되어 계획한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ITC의 결정 또한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라 LG 배터리의 우수성을 알리게 되는 명분도 얻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합의금으로 2조원을 현금과 판매에 대한 지분으로 물어내야 하는 SK이노베이션이지만 한편 실리도 얻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만약 이번에 합의하지 않았다면 이미 조지아주 SK이노베이션 공장들에 투입된 26억불, 약 3조원이 날아갈 상황이었다. 그리고 산정하기 어려운 배상금도 예상되었었다.
미국의 SK이노베이션 공장들에서 만든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한 폭스바겐이나 포드에 배터리를 공급하지 못한 데 따른 배상금액이 더 컸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한다. 이 합의를 통해 영업비밀침해를 인정하게 되었지만 실리는 얻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 바이든 행정부에도 영향을 끼친 양사의 배터리 전쟁
이번 배터리 회사들의 영업권 침해 분쟁은 두 회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전 세계 배터리 산업계뿐 아니라 미국 산업계와 정치계에도 불똥이 튀었다.
미국 대통령은 의회나 각종 위원회의 결정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ITC의 최종 결정도 60일 이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지난 3월 11일(현지시각)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마지막 시한이었다.
두 회사는 영업비밀침해에 대한 ITC의 최종판결 이후에도 협상을 진행했다. 하지만 합의금 규모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공장이 들어설 조지아주 주지사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행사를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조지아주에 있어서 배터리공장은 경제적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조지아주 켐프 주지사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26억달러 투자 기회와 2600개의 조지아주 일자리가 만들어짐을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바이든 정부는 난처한 처지에 빠졌다. 미국 대통령이 ITC 영업비밀 침해소송에서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중국의 지식재산권 탈취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을 중요한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미국은 분명 전기차 산업도 확대해야 하고 일자리도 창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준 ITC 결정을 받아들일 수도, 그렇다고 영업비밀침해를 한 SK이노베이션 편을 들기 위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졌었다.
결국, 바이든 정부의 두 회사를 향한 적극적 중재가 이번 합의의 큰 배경이 되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 훗날 모두의 승리로 평가되기를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가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는 중국의 CATL을 견제하며 'K-배터리'의 경쟁력을 강화할 기회라는 평가를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합의를 기점으로 미국에서 본격적 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GM과 함께 미국 테네시주에 두 번째 배터리공장을 설립한다는 계획이 알려졌다. 분쟁 기간에 점유율 세계 1위를 중국의 CATL에 내준 LG에너지솔루선은 앞선 기술력과 적극적 투자로 전기차 회사들에 영향력을 더욱 키워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합의로 ITC의 수입금지 조치 무효화라는 기회를 얻었다. 따라서 조지아주 1공장을 안정적으로 가동하고 2공장 건설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공급이 안정되면 향후 국내외 추가 투자도 적극적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한다.
지난 2년간 진행된 두 회사의 분쟁은 실리를 얻는 합의로 마무리되었다. 또한, 두 회사는 실리보다 더 큰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기술력이 입증된 두 회사가 정당한 기술력 경쟁을 벌인다면 K-배터리가 머지않은 미래에 전기차 산업의 가장 큰 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이넷뉴스=강대호 기자] dh9219@e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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