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는 과연 원전을 옹호하고 신재생에너지를 비판했을까
[이넷뉴스] 빌 게이츠를 누구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측면에서 벤처기업가로, 윈도우 같은 컴퓨터 운영 체제를 주도한 측면에서 기술 혁신가로, 그리고 자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타인에게도 기부 문화를 전파하는 측면에서 자선사업가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친환경 연구 투자자로 변신한 모습까지 보여준다.
빌 게이츠가 지난 10년간 몰두한 주제는 바로 기후변화다. 그는 빈곤과 질병 퇴치를 목표로 2000년에 자신과 아내 이름을 딴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했다. 재단 공동이사장으로서 게이츠가 빈곤과 질병 퇴치 활동을 펼치며 맞닥뜨린 에너지 빈곤 문제가 기폭제가 되었다고.
“세계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에너지를 공급할 의무가 있지만, 그 에너지는 온실가스를 더 이상 배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공해야 한다.”며 빌 게이츠는 전 세계 수많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기후변화 연구에 집중했다. 그 결과를 담은 책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이 지난 2월 16일 전 세계에서 출판되었다.

◇빌 게이츠의 기후재앙에 대응하는 법
빌 게이츠의 목표는 “온실가스 배출량 순 제로(Net Zero) 달성”이다. 우선 선진국이 혁신적인 기후 솔루션을 개발해 2050년 탈탄소화하고, 이런 혁신을 전 세계에 저렴하게 공급해 대기권에 온실가스를 더 이상 배출하지 않는 제로 탄소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 혁신가답게 빌 게이츠는 ‘제로’ 달성을 위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태양광과 풍력 등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이미 적용되고 있는 재생에너지 기술을 소개하고, 이 기술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빌 게이츠는 그 원인을 해가 항상 떠 있지 않은 것에서 찾는다. 그래서 그는 획기적 기술을 개발하고 실용화의 필수 요소인 혁신을 설명하는 데에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기술과 혁신 소개에 이어 정부와 기업 그리고 각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들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거기에 빌 게이츠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담긴 것으로 보였다. 그는 우리가 화석연료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도구 세 가지로 기술, 정책, 그리고 시장을 꼽는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혁신의 공급과 수요를 늘려야 하는데, 결국 혁신 공급의 주체는 기업이고, 혁신 수요의 주체는 정부라고 빌 게이츠는 주장한다. 정부가 적절한 유인책으로 기업이 혁신을 많이 만들어내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혁신은 단순히 새로운 장치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혁신을 최대한 빠르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정책도 혁신”이라며 정부의 역할을 여러 번 강조한다.
빌 게이츠는 환경과 성장을 대립 관계로 보지 않는다. 아마도 책을 쓰는 시점에 코로나19가 창궐한 모양인지 책의 후기에서는 감염병을 빗대 설명한다. 오히려 코로나19로부터 경제를 구하고 기후재앙도 피할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청정에너지 연구 개발에 대한 투자는 경기 회복을 촉진하고 이로 인해 탄소 배출량을 감축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단기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장기적으로는 제로를 달성하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그린 프리미엄을 낮추는 정책을 도입한다면 청정에너지 기업들이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제공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경제성장과 제로 탄소 혁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빌 게이츠는 확신한다.

◇빌 게이츠는 과연 원전을 옹호한 걸까
빌 게이츠의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이 나오자 국내 언론들은 그가 원전을 옹호했다는 취지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가난한 이들에게 안정적 에너지를 저렴하게 공급하려는 빌 게이츠의 관심은 온실가스와 기후변화의 관련성을 알게 된 뒤 안정적이며 저렴하고 깨끗한 에너지 공급으로 바뀌었고, 이는 차세대 원전 개발에 관한 관심과 투자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이 책에도 담겼다.
그래서일까 책 전반에 걸쳐 에너지 생산, 제조업, 농축산업, 교통, 냉난방 등 인류 사회 전 영역에서의 변화와 기술 혁신을 촉구했던 대부분은 묻혀버리고, 많은 언론이 '빌 게이츠가 오직 원전만이 유일한 구세주라 주장했다'는 식의 기사들을 남발했다.
책은 읽지 않고 기사와 제목만 본 독자들은 아마도 빌 게이츠가 원전을 옹호했다고 믿을 것이다. 책은 356쪽 분량이다. 원전이 직접 언급된 건 11쪽으로, 그중 2쪽은 핵분열이 아닌 핵융합 발전을 설명한 부분이다.
출판사 관계자는 “저자가 원전을 통한 무탄소 전기 생산을 지지하고 있긴 하지만 깨끗한 전기 생산의 방법이 원전만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가 소개한 원전도 우리가 지금 쓰는 원전이 아닌 차세대 원전인데도 원전만이 집중 확대 보도되면서 원전 홍보 책으로 오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빌 게이츠가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한마디로 “해마다 지구상에 510억톤씩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적 해결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물론 차세대 핵발전을 강조했지만,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와 그의 확대도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가 반대한 탄소세 등 강력한 탄소 가격 설정도 찬성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뒤떨어진 재생에너지 후진국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유럽 주요 국가는 40%를, 중국과 일본은 20%를 넘고, 트럼프 대통령 시절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했던 미국조차도 20%에 달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6%에 머물러 OECD 36개국 중 35위를 차지한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우리에게 지금 중요한 건 탈원전이 맞고 틀리느냐를 따지는 게 아니라 OECD 최하위 수준인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끌어올려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 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제언한다.
[이넷뉴스=강대호 기자] dh9219@e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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