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과학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아야

에너지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진=픽사베이)
에너지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진=픽사베이)

[이넷뉴스] 몇 해 전 한 공식 자리에서 '탈원전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급진적 정책 전환은 위험하다’는 평소 생각을 어떻게 답변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대강의 요지는 이러했다. 첫째, 정책적 사안을 정치, 이념, 특히 선거 공약화해 정치적 프레임 안으로 끌어들이는 발상은 매우 위험한 접근이다. 찬반 여론이 분분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공약하고 선거를 통해 선택을 강요함으로써 준비되지 않은 국민을 소모적 분란의 소용돌이에 빠트리면 안 된다.

둘째, 만일 공약으로 내세우고 싶다면 과학적 근거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정보로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기 위한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 공약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또 그런 과정이 생략된 선거 결과를 국민 합의로 간주하는 것 역시 매우 독선적인 통치 의도가 될 수 있다.

셋째, 환경이 현재 우리 소유가 아니듯, 에너지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집권 세력의 전유물은 더더욱 아니다. 국민은 물론 에너지 전문가와 학자, 관련 기관 종사자 등 다양한 의견이 존중되고 충분히 반영된 정책이 제시돼야 한다.

◇ 일방적 선거 공약에 의한 에너지 정책은 위험하다

이제 새로운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다. 세계 최고의 안정성과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원전 수출에 전력을 다할 비전을 제시했다.

개인적으로 볼 때,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언젠가 철저한 준비가 이뤄진 상태에서 새롭고 다양한 에너지원이 원전과 함께 각자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지금이 바로 그때인가 하는 점에서는 여전히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다. 준비 없이 급작스럽게 강행하는 정책변화는 예측하지 못한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했다.

지난 5년간 정권의 시퍼런 서슬 때문이었는지 원전이 왜 필요한지 설명해주는 목소리를 듣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에 비해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금 탈원전 정책을 성토하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에너지원으로써 원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필자로서는 거북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때도 그랬더라면 하는 씁쓸함을 떨칠 수 없다.

지난 5년간 어려운 상황에서도 원전의 필요성을 외치던, 그래서 더 빛나던 몇몇 이름을 기억한다. 열악한 원전산업 생태계를 어떻게든 살려내고자 눈물겹게 애쓰던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에너지는 미래 후손들의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에너지는 미래 후손들의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 에너지의 참 주인은 미래 후손

탈원전도, 친원전도 정치적 프레임 안에서 논의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정략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원전에 대해 비과학적인 불안감을 무리하게 조성하는 것은 국민 여론을 호도하는 비이성적 행위일 뿐이다.

다시는 에너지 문제를 선거판 표 장사의 미끼 상품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전문가 판단과 호소를 외면한 채 오로지 정략적 계산만으로 급조한 공약은 현재와 미래에 큰 죄업을 남기는 일이다.

이제 끝을 맺자.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진영의 주장만을 좇아 극단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경험했다.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국민 또한 그런 정략적 놀음을 선별해낼 수 있는 혜안을 길러야 한다.

어떤 정책이든 찬성도, 반대도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런 치열한 토론 속에서 발전의 싹은 트고 자란다. 다만 그 논의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논거에서 비롯돼야 한다.

감성팔이도, 정치적 책략도 절대 허락해서는 안 된다. 이제 다시는 진영논리에 따라 선거판으로 끌어들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 과학을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해선 안 돼

에너지의 참 주인은 미래 후손이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잠시 빌려 왔을 뿐이다. 당연히 그 누구도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고 할 수도 없다. 국민 뜻을 살피고 전문가, 원전 관련 종사자, 학자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맡겨야 하듯, 정치가 과학의 영역을 범하려 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정치적 입지를 위해 입증되지 않은 불안감을 조성해서 에너지 정책의 틀을 흔드는 일은 절대 거부해야 한다.

그것만이 국민을 갈등의 늪으로 몰아넣지 않고 후손에게 희망을 전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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