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과학적 공포의 피해자는 결국 국민

원전에 대한 위험성 부각은 국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사진=언스플래쉬(unsplash))
원전에 대한 위험성 부각은 국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사진=언스플래쉬(unsplash))

[이넷뉴스] “에너지 정책을 찬반의 정치적 프레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택이다.”

3년 전 한 인터뷰 자리에서 필자가 밝힌 의견이다. 에너지에 관련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않은 채 공약으로 서두르는 것은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그 후 내 생각은 더욱 견고해졌다. 여야는 과학적 자료와 입증보다 정략적 판단으로 에너지 문제에 접근했고, ‘원전’에 대한 입장 역시 갈수록 극단적 양상을 이어가고 있다.

원전에 부정적인 측은 안정성과 효율에 대한 과학적 입증에도 불구하고 위험성을 부각함으로써 국민 불안감을 부추긴다. 학계나 전문가들의 설명과 각종 입증 자료도 소용없다. 최근 원전 주변 지역주민들이 ‘정치적 선동으로부터 생존권을 지켜달라’는 호소문을 발표하기에 이를 정도다. ‘원전이 주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 정작 주민들이 자중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23일 정부와 한전은 10월부터 적용하는 4분기 전기 요금을 kWh 당 3원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2013년 11월 이후 약 8년 만에 분기당 요금 인상 상한선까지 올린 것이다. 언론은 4인 가구(평균 사용량 350kWh)의 경우 매달 1,050원씩 전기 요금을 더 내게 된다고 보도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기 요금은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전기 요금 인상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물가 인상 부담에 밀려 지난 8년간 멈춰있던 것이 사실이다.

전기 요금 인상에 대한 당위성을 수긍하면서도 이번 인상 원인을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 가능한 데에는 ‘정책에 대한 국민 공감대’ 여부와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한 여건에서 단가가 낮은 원전 발전을 줄이고 값비싼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을 늘린 영향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의 성공은 국민적 공감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공감은 진정성 있는 소통에서 얻을 수 있다. 에너지 정책 선택과 결정에서 과연 그런 소통이 있었는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 공감은 진정성 있는 소통으로부터

월성 원자력 발전소 1호기.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월성 원자력 발전소 1호기.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최근 모 방송사는 ‘월성원전에서 인체에 치명적인 물질이 20년 넘게 누출되었고 이 물질에 의해 암이 유발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월성원전 부지 내 집수정에서 삼중수소가 리터당 75.6만Bq, 세슘-137이 g당 0.14Bq 검출되었고 일부 토양에서는 g당 0.37Bq이 나왔으며 원인은 사용 후 연료저장시설에 균열이 생겼으나 제대로 보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다. 우연인지, 인터뷰이들은 평소 원전 반대 성향의 인사들이었다.

민간조사단의 이러한 조사 결과를 근거로 반핵운동가들은 더 나아가 월성 2,3,4호기도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도 이후, 이번 이슈를 추적해보기로 했다. 원전 부지에서 삼중수소와 세슘이 검출되었다는 보도 내용을 사실이라 가정하고, ‘과연 그것이 원전 지역주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가 될 수준인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첫째, 보도 내용처럼 ‘사용 후 연료 저장시설에서 20년간 누설되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물은 수집되어 발전소에서 처리된 후 외부로 나가게 되어 있다. 즉 리터당 75.6만Bq의 삼중수소를 포함한 물이 그대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정화처리 과정을 거쳐 리터당 약 13Bq 이하로 낮춰 바다로 나가게 된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원전의 기본 시스템이다.

일반인이 국가보안시설 '가'급인 원전 부지에 들어가서 정화처리 이전의 집수정 물을 마실 일은 불가능하고, 올해 1월 모 방송 뉴스 보도처럼 ‘원전 경계지역에서 최고 924베크렐의 삼중수소가 검출되었다’는 것을 보더라도 사실상 주민 건강과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학계 의견이다.

WHO의 음용수 기준은 1만Bq이다. 핀란드 3만Bq, 캐나다 7천Bq, 호주 7만Bq인 것을 감안하면 월성원전 방출수의 수치에 대해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수준’이라는 지적은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파장은 단순히 민망함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민에게 막연한 불안감을 조장함으로써 에너지에 대한 그릇된 인식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할 일이다.

또 하나, ‘오염된 물이 지하수를 통해 외부로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현재 원전 외부 경계 지역에서 측정된 삼중수소 최대값은 924Bq로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세슘은 어떨까?

세슘을 약 4천만 Bq을 섭취했을 때 연간 일반인 선량한도 1mSv 정도가 된다고 한다. 즉, 월성 부지에서 최대 g당 0.37Bq이 검출된 흙을 100,000kg(100톤) 먹어야 된다는 것인데 과연 가능한 일일까? 원자력 전공 교수의 의견에 따르면 뉴스에서 위험하다고 지적한 수치, g당 최대 0.37Bq이 검출된 흙 1kg을 먹는다 가정할 때, 제주산 생멸치 10g을 먹은 내부피폭량과 동일한 것이라 한다.

◇ 생멸치 10g을 먹은 내부 피폭량이 치명적?

둘째, 사용 후 연료 저장시설에서 20여년 누설되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일부 토양이 아닌 사용 후 연료저장조 전체 토양에서 삼중수소, 세슘뿐만 아니라 코발트 등도 검출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보도의 논거로 사용되는 수치는 극히 한정된 일부 토양 시료에서만 세슘이 검출되었다. 물론 판단은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가정을 사실처럼 자극적으로 보도하기 전에 과학적 사실에 먼저 접근했어야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원전 부지 안에서 방사성물질이 검출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원인에 대해 추가로 조사하고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조사가 완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일부 추정 의견을 과장 보도하면 국민은 막연한 불안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역할과 태도에 대해서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 원안위는 원전이 안전하게 운영되도록 관리 감독하는 규제 기관이다. 따라서 원자력발전소의 모든 행위는 원안위의 결정에 따르게 되어 있다. 원전의 움직임과 멈춤, 심지어 ‘원안위 결정 없이는 원전 안에서 숨 쉬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무한 권한과 책임을 지닌 기관이다.

그렇다면 국민에게 원전에 대한 과학적으로 입증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국민이 막연한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도 함께 지닌다. 언론 보도에 대한 사실관계를 과학적인 기준과 입증으로 중심을 세워야 할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침묵하고 방관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셋째, 이렇게 ‘다량 검출’ ‘심각’ ‘위험’ ‘암 유발’ 등의 선정적 단어로 과도한 위험성을 부각하는 일방적 보도의 가장 큰 피해는 오로지 지역주민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이번 지목된 누수 현장을 월성원전 주민 대표자들이 직접 참여 확인하게 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월성원전 주변지역 주민들이 과장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호소문까지 작성해야 했을까 싶다.

보도 이후, 관광객이 현저하게 감소하고 지역 특산품 판매와 지역 상권의 매출이 급감한다는 것이 주민 호소의 핵심이다. 코로나로 인해 가뜩이나 침체된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사실을 덮자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만을 알려달라는 호소를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보도 내용처럼 20여년간 인체에 치명적인 물질이 누출되었고 그로 인해 암이 유발된다면, 그 발전소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과 평생을 그 주변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은 모두 암환자란 말인가?

발전소 운영에 종사하는 직원들은 매년 정기 건강검진을 받고 있으며 방사선 노출에 대한 별도의 관리를 받고 있다. 특별한 병리적 결과를 발견했다는 소식도 알려진 바가 없다.

다분히 정략적으로 접근한 정책과 그 선택이 옳았음을 강변하기 위해 조장하는 비합리적 공포가 과학적 입증을 삼켜버리는 행위는 결국 국민 모두의 피해만 남길 뿐이다.

◇ 비과학적 공포의 피해자는 결국 국민

리터당 삼중수소가 7,000베크렐 포함된 물을 매일 2리터씩 1년간 마셨을 때 받는 피폭선량이 0.1mSv/yr이라고 한다.

각 나라별 연간 자연방사선으로 피폭되는 선량이 1.5~7.0mSv/yr(호주 1.5mSv, 우리나라 4.2mSv, 핀란드 7.0mSv)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주 미미한 수치이다. 한 학자의 비유를 빌리자면, 월성원전 주변 주민의 삼중수소 최대 피폭량은 1년에 바나나 3.4개를 먹었을 때 받는 피폭량과 같다고 한다.

그런데 뉴스는 원전 한정된 지역에서 최고 924베크렐의 삼중수소가 검출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과연 그 수치가 주민들에게 치명적 위해를 가할 정도인지에 대해서 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노출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 8시간 동안 옆 사람과 한 침대에서 수면할 경우 피폭량이 0.02mSv/yr(월성원전 경계지역 삼중수소보다 더 높은 수치)

- 흉부 X-ray 1회 촬영 시 0.05~0.1mSv

- 인천~뉴욕 항공기 왕복에 0.15mSv

- 하루 담배 8개피 흡연 시 1mSv/yr

- 가슴 부위 CT 1회 촬영 시 6~18mSv

- 전 세계 평균 자연 방사선량은 2.4mSv/yr

우리는 흉부 X-ray 촬영과 같이 일상에서도 피폭을 경험한다. (사진=언스플래쉬(unsplash))
우리는 흉부 X-ray 촬영과 같이 일상에서도 피폭을 경험한다. (사진=언스플래쉬(unsplash))

이렇게 세계적으로 입증된 자료에도 불구하고 우리 원전이 위험하고 인체에 치명적 위해를 가하는 것이라는 시각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위한 접근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덤으로 한 마디만 더 추가하자면, 삼중수소는 방사선 피폭의 위험물질만이 아니란 점이다.

참고로 현재 금값이 g당 7만원 내외인데 비해 삼중수소는 1g에 2,500만~3,000만원을 호가하는 자원이다. 자체 발광하기 때문에 전원이 끊기더라도 항상 표시될 수 있어서 비행장 활주로유도등이나 야간 군사작전 장비, 고급 시계의 야광표시 등에 활용되는 자원이다.

환경과 에너지의 진정한 주인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아니다. 우리 마음대로 결정하거나 선택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다. 하물며, 과학적 입증과 합리적 근거 없이 정치적 손익에 따라 함부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언론은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사실관계에 입각한 정보만을 전달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지키는 목탁의 역할이며 미래를 대비하는 현명하고 책임 있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이넷뉴스=심산 논설위원] shim@e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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