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8개 계열사, 국내 첫 RE100 가입
공공기관 한국수자원공사도 참여
정부, RE100 이행 위한 제도적 근거 마련
[이넷뉴스] 2018년 애플은 기업 활동에 필요한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위치한 본사 건물은 물론 애플스토어, 데이터센터 등이 사용하는 전력을 모두 태양광, 풍력 발전 등으로 공급하게 된 것이다.
애플뿐 아니라 구글, 아마존, GM, 이케아, 스타벅스 등의 글로벌 기업들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RE100(Renewable Energy 100%) 캠페인에 동참하며 재생에너지 활용에 앞장서고 있다. 국내에서는 최근 SK그룹 8개 관계사가 한국 RE100 위원회에 처음으로 가입신청서를 제출했다.
◇ SK그룹, 국내 최초로 ‘RE100’에 가입
SK그룹은 이달 초 SK주식회사·SK텔레콤·SK하이닉스·SKC·SK실트론·SK머티리얼즈·SK브로드밴드·SK아이이티테크놀로지 등 8개 계열사와 국내 최초로 RE100 가입을 선언했다.
RE100은 영국 런던 소재 다국적 비영리기구인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이 2014년 시작한 캠페인으로 현재 전 세계 263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가입한 기업은 2050년까지 사용전력량의 100%를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조달하는 RE100을 실현해야 한다.
더 클라이밋 그룹은 발전이나 정유·석유화학·가스 등 화석연료 관련 사업을 하는 회사의 경우 자체심사를 거쳐 가입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SK E&S, SK에너지, SK가스 등 가입 대상이 아닌 관계사들은 자체적으로 RE100에 준하는 목표를 세워 실행하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은 회사 단위 가입 조건에 따라 이번에 가입은 못하지만, 역시 RE100과 동일한 기준으로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들 계열사가 제출한 신청서는 더 클라이밋 그룹의 검토를 거쳐 가입이 최종 확정된다. RE100 가입 후에는 1년 안에 이행계획을 제출하고 매년 이행상황을 점검받아야 한다. SK그룹은 RE100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정부가 시행을 준비 중인 제3자 PPA(전력구매계약), 녹색프리미엄제 등으로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제3자 PPA’는 한국전력 중개로 재생에너지 사업자로부터 전력을 직접 구매하는 제도를 말한다. ‘녹색프리미엄제’는 한전이 사들인 재생에너지 전력을 기업이 일반 전기요금보다 높은 가격으로 구매하는 것으로 간접적으로 재생에너지 전력을 구매하는 효과가 있다.
지분 투자도 주요 방법의 하나가 될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RPS)에 활용되지 않은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직접 구매하거나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 지분을 투자하면 재생에너지를 사용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번 가입으로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지난 10월 CEO세미나에서 미래 성장전략 중 하나로 강조했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이라는 신뢰를 얻게 됐다. 또한 유럽연합(EU)이 탄소 배출량이 높은 수입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 국경세’ 도입을 검토하는 등 국제사회의 친환경 규제 강화 움직임에 한발 앞선 대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SK SUPEX추구협의회 이형희 SV위원장은 “이상기후 등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소 발생량을 줄이자는 친환경 흐름에 한국 기업 또한 본격 참여하게 돼 의미가 깊다”라며 “국내 재생에너지 시장 확대와 에너지솔루션 등 신성장 산업 육성에도 작은 토대가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 국내 기업들 RE100 추진 잇달아···한수공도 참여
SK그룹의 RE100 참여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기업들의 RE100 가입도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LG화학은 국내기업 중 처음으로 전 세계 모든 사업장에 RE100을 추진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밝혔다. LG화학은 또한 업계 최초로 기후변화에 대응해 추진 중인 ‘2050 탄소중립 성장’을 통해 오는 2050년 탄소 배출량을 지난해 배출량 수준인 1,000만 톤으로 억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음 달 1일 출범하는 배터리 사업 독립법인 LG에너지솔루션은 2019년 폴란드 공장에 이어 지난 7월부터 미국 미시간 공장도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차후 국내 오창공장과 중국 난징 공장에 100% 재생에너지를 도입해 이르면 2025년부터 전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예정이다.
삼성물산은 최근 이사회에서 석탄 사업을 과감히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석탄 관련 투자와 시공, 트레이딩 사업을 신규로 추진하지 않고 기존 사업은 완공 및 계약 종료 이후 순차적으로 철수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삼성그룹이 삼성물산을 시작으로 RE100 가입을 위한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RE100 가입에 신중한 입장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김석기 부사장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자리에서 “제도 여건이 갖춰지면 RE100을 추진하겠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RE100 가입 선언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RE100 가입을 추진하는 기업들이 증가하는 가운데 공공기관 중에서는 한국수자원공사가 처음으로 RE100에 참여한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이미 탄소중립을 실현하고 있는 국내 1위 재생에너지 기업이다.
지난 16일 대전시 대덕구 본사에서 열린 창립 53주년 기념식에서 한국수자원공사는 공기업 최초로 ‘기후위기 경영’을 선언하며 정부의 탄소중립 선언과 연계하여 RE100에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수상 태양광, 수열에너지와 같은 청정 물에너지 보급 확대를 통해 국내 기업들이 RE100에 동참할 수 있도록 지원사격에 나설 계획이다.
박재현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은 “공사창립 53주년을 맞아 기후위기 경영 선언을 넘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행동을 해야 할 시점”이라며 “한국수자원공사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 등과의 긴밀한 협업을 기반으로 기후위기 경영을 차질없이 추진하여 물 전문 공공기관으로서 우리나라의 녹색 전환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 제도적 기반 마련되면 RE100 가입 가속화될 듯
국내 기업들이 발 빠르게 RE100 가입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국제적 흐름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크다. 특히 해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국가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 RE100과 같은 저탄소·친환경 경영의 도입은 더욱더 필수적이다. 애플, BMW 등 이미 RE100에 가입한 글로벌 기업들은 공급망까지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를 위해 부품을 납품하는 기업들에도 재생가능에너지 사용 동참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이 적은 국내 기업들은 해외 입찰수주 활동이나 외국계 기관(펀드) 투자 유치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국내에서 재생에너지를 구매·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달라는 기업들의 요청에 따라 지난 9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선별적으로 해당 전력을 이용할 수 있는 제도 등을 담은 ‘국내 RE100 이행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국내에서 RE100을 이행하기 위한 근거도 확립된다. 지난 23일 정부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RE100 이행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설비의 지원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이번 개정안은 RE100 이행 전담기관 및 운영기관을 지정하고, 재생에너지 사용수단 신설 및 확인서 발급 절차도 규정했다. 또한 녹색프리미엄제로 마련된 재원의 활용과 이를 위한 재생에너지 사용 심의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한 규정도 명시했다.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을 가능하도록 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도 이르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계획이다.
그동안 RE100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에 비해 RE100을 실천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 개정안으로 구체적인 근거가 마련되면서 내년부터 기업들의 RE100 참여는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이넷뉴스=정민아 기자] news@e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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