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에서 수소로, 그리고 데이터로···한국형 에너지 대전환의 시간표
2026년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이때, 한국경제는 또 한 번의 전환점에 서 있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기술패권 경쟁, 인구구조의 급변 속에서 산업의 지형은 빠르게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넷뉴스>는 ‘2026 대전환, 한국경제의 새 축을 찾아서’ 기획시리즈를 통해 인공지능(AI)과 그린테크, 실버이코노미, 스마트제조, K-바이오 등 차세대 성장 축을 심층 진단한다.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미래 먹거리를 모색하며, 지속 가능한 경제 생태계의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① AI 내재화 전쟁, 2026년 기업 생존 가를 분수령
② 그린테크 산업 재편
③ 실버 이코노미, 고령사회 새로운 산업지도
④ 스마트 제조, 디지털 전환 핵심 축
⑤ 2026 K바이오 산업의 핵심 트렌드···AI 신약개발부터 바이오 빅데이터까지

[이넷뉴스] 2026년은 에너지 전환이 실질적으로 한국 산업구조를 바꿔놓는 원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탄소 감축이 국제 규범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이제는 ‘감축’이 아니라 ‘전환’이 핵심 키워드가 됐다.
전 세계는 이미 ‘넷제로(Net-Zero) 2050’을 향한 대장정에 돌입했다. 유럽연합(EU)은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통해 수입 제품의 탄소 배출량까지 규제하기 시작했다. 이는 사실상 ‘탄소세’이자 산업의 무역장벽이다.
한국의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산업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철강업체 관계자는 “이제는 철을 어떻게 만드느냐보다, 얼마나 적은 탄소로 만드느냐가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정부는 2026년을 ‘한국형 그린 뉴딜 2.0’의 전환점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특히 수소경제 로드맵 2단계를 통해 청정수소 인증제, 수소 파이프라인 인프라 구축, 액화수소 플랜트 확충 등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가시화되고 있다.
한편, 민간기업들은 재생에너지 기반의 PPA(전력구매계약)을 확대하며 탈탄소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현대차·포스코·한화 등 주요 그룹은 각각 수소·태양광·배터리·탄소포집 분야에 수조 원을 투자하고 있다.
그린테크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경영의 기본 언어’가 되었다. 문제는 속도와 효율의 균형이다.
한국은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풍력발전의 입지 갈등, 태양광의 환경훼손 논란, 수소의 경제성 문제 등 현실적 제약이 크다.
그린테크가 성공하기 위해선 기술 혁신만큼이나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유연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탄소 감축뿐만이 아니라, 에너지 시스템 전체를 ‘지능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특히 2026년 이후 주목할 변화는 ‘에너지 데이터 산업’의 부상이다. 태양광과 풍력, 수소 설비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실시간 데이터의 분석이 필수적이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결합한 ‘그린데이터 플랫폼’은 에너지 공급과 수요를 동시에 조정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이미 전력망을 디지털화하며 ‘스마트 그리드 생태계’를 완성했고, 한국 역시 한전과 민간기업이 협력해 유사 모델을 추진 중이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업보다, 에너지 흐름을 설계하는 기업이 새로운 시장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린테크의 확산은 산업 간 경계도 허물고 있다. 전통 제조업이 배터리·소재 기업으로 변모하고, 정보기술(IT)기업이 에너지 솔루션 업체로 진화한다.
특히 2차전지 산업은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 폭증에 힘입어 핵심 성장 축으로 부상했다. 한화큐셀·LG에너지솔루션·SK온 등은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며 한국형 그린테크의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속도전’에 매몰될 위험도 있다. 탄소중립 목표가 경제성·고용·산업 경쟁력과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린테크의 본질은 ‘감속’이 아니라 ‘전환’에 있다.
탄소를 줄이면서도 산업의 활력을 유지하려면, 기술 개발뿐 아니라 정책 일관성과 금융 지원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 ESG 평가 기준, 그린 금융 인증제 등이 현실 산업 현장과 조화를 이루는 정책 설계가 절실하다.
한국의 그린테크 산업은 이제 막 ‘도입기’를 넘어 ‘내재화 단계’에 들어섰다. 그린은 더 이상 환경의 언어가 아니라 경제의 언어, 곧 미래 산업의 기준이다. 2026년 이후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탄소를 줄이는 국가'가 아니라 '에너지를 혁신하는 국가'로 변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성장은 기술이 아니라 전환의 의지에서 시작된다.
김규민 기자(news@e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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