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 위해 합리적인 전기요금 필요
연료비 연동제·환경비용 고지 등 긍정적 평가
신기후체제 상황···전기요금체계도 진화해야

[이넷뉴스] 지난해 말 산업통상자원부가 전격적으로 전기요금 개편 체계를 확정 지은 후 연료비 연동제 도입과 관련한 전문가들의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 21일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전기요금체계 개편안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고, 곧이어 26일에는 대한전기협회가 전력정책포럼을 개최했다.

◇ 전기요금 현실화, 상식적으로 접근하자

대한전기협회는 서울 송파구 전기회관에서 ‘기후위기시대 전기요금 정책 방향’이란 주제로 2021년 제1차 전력정책포럼을 지난 26일 개최했다.

포럼은 조성경 명지대 교수 사회로 진행됐으며, 토론에는 문승일 서울대 전기공학과 교수,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박사, 정형석 한국전기신문사 팀장, 신경휴 한국전력공사 요금정책실장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2021년 제1차 전력정책포럼 유튜브 캡처 (출처: 대한전기협회)
2021년 제1차 전력정책포럼 유튜브 캡처 (출처: 대한전기협회)

그동안 기존의 전기요금체계는 국제유가 등 원가 변동분을 적시에 반영하지 못하고 신재생에너지 공급, 온실가스 감축 관련 비용 등이 명확히 공개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말 연료비 조정요금 항목을 신설해 3개월마다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원가연계형 전기요금체계’라는 이름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외국에서는 연료비 연동제가 이미 보편화됐으며, 우리나라도 도시가스와 지역난방에 이 개념을 적용 중이다.

또한 그간 전기량요금에 포함됐던 신재생에너지 의무이행비용(RPS)과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비용(ETS)은 ‘기후·환경요금’으로 별도 분류돼 소비자에게 고지됐다.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등 석탄발전감축비용도 새로 도입돼 기후·환경요금에 반영됐다.

지난해 하반기 유가 하락세로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연료비 조정단가는 kWh당 3원이 인하됐다. 1월 적용된 환경비용 단가는 RPS와 ETS가 kWh당 각각 4.5원, 0.5원, 석탄발전감축비용이 kWh당 0.3원이었다. 그 결과 개편 후 처음 부과된 올해 1월 전기요금은 월평균 350kWh를 사용하는 4인 가구의 경우 기존과 비교해 1,080원이 낮아졌다

산업부와 한국전력공사는 전기요금체계의 개편으로 소비자가 어떻게 전기요금이 변하는지 예측할 수 있어 합리적으로 전기를 사용하게 하는 효과, 친환경에너지 확대에 대해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여건을 조성하는 효과 등을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이번 전기요금 체계 개편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문승일 교수는 “전기요금이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저 역시 싫다”고 운을 떼며 “하지만 상식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우리나라의 전기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3분의 2 정도가 석탄·가스·석유에서 얻어지며 발전에 쓰는 연료는 100% 외국에서 수입한다. 당연히 전기요금은 연료비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연료비와 전기요금이 연동된다는 것은 너무 상식인 얘기”라고 말했다.

오히려 너무 오랫동안 합리적인 제도를 실행하지 않고 획일적인 전기요금제를 시행해 왔기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에너지 정책, 무역·경제에 영향력 커져

전기요금체계는 국가 차원의 기후변화 대응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유진 박사는 “2050 탄소중립은 화석에너지에 기반한 경제 시스템에서 30년 안에 벗어난다는 것”이라며 그 의미를 분명히 했다.

특히 “최근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된 후 탄소국경세금 등 각국의 통상이나 무역 정책에 에너지 정책이 들어오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에너지 정책에서 탈탄소화와 에너지 전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2019년까지의 온실가스 배출에 관한 현황을 보면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세운 목표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 박사는 이를 “에너지 집약도, 탄소 집약도가 높기 때문”으로 봤다.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내놓은 2050년 전력 부문 전원믹스 구성에서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비중을 영국은 50% 정도, 독일 85%, 미국 80%, 일본 78%를 목표치로 설정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탄소중립까지 전원믹스 구성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이 박사는 “환경부가 장기저탄소전략을 수립할 때 세운 목표가 재생에너지 비중 60%였다”며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탄소중립으로 가는 전력정책과 시장제도를 큰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해야 한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수준의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원가연계형 전기요금체계를 적용한 청구서 예시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원가연계형 전기요금체계를 적용한 청구서 예시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정형석 팀장은 “에너지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안정적인 전력공급과 적정한 수준의 전기요금을 지불하게 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또한 전기요금의 첫 번째 기본 원칙으로 “비용이 가격에 제대로 반영이 됐느냐”를 꼽으며, “연료비만큼도 내지 않은 전기요금은 미래에 전가된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로 “소비자가 공정하게 지불하고 있느냐”는 기본 원칙에 대해서 가정의 누진세 문제를 언급했다. 정 팀장은 이 부분이 올해 안에 해결해야 한다고 봤다.

이번 전기요금체계 개편은 “연료비 변동의 불확실성을 해소했고, 환경비용도 우리가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를 쓰기 위해서는 비용이 드는 것을 알려주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한전의 부담은 발전 공기업이나 민간 에너지기업에 연계된다. 불합리한 전기요금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에너지 전환 과정에 부작용이 발생하고 갈등이 벌어진다.

정 팀장은 “이제는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솔직하게 공개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 “적절한 전기요금 정책, 국가 경제를 건실하게 만든다”

유가 하락세로 현재 전기요금은 개편 영향이 거의 없이 안정적이다. 하지만 원전과 석탄발전을 줄이고 LNG발전을 늘리는 추세에서 향후 LNG 가격이 급등할 경우 전기요금도 상승할 수 있다. 이 경우 소비자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문승일 교수는 “전기요금이 오르냐 마느냐만 단편적으로 보면 건설적인 결론이 나오지 않고 모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며 “오히려 국제 유가가 다 올라가는데 전기요금이 올라가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좋은 일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국제 유가가 올라가면 즉시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도 상승한다. 문 교수는 이 경우 전기요금도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며, 오히려 전기요금체계에서는 유가 상승이 반영되기까지 3개월 정도 딜레이가 있고, 변동 폭도 상한·하한이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유가 상승에도 전기가 싸면 “다른 에너지 쓰지 않고 전기만 쓸 것”이라며 “전기는 가스를 태워서 만들어지고 그중 3분의 1만 전기가 되는데, 이 전기가 원료인 가스보다 더 싸게 팔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그 비용은 누군가는 지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기업인 한전이 적자가 누적되어 회사를 운영하지 못할 상황이 온다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또한 그 경우에는 “현재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13%에 지나지 않지만, 국민 전체가 부담을 나눠야 한다”며 “값싼 전기요금이 국가 경제를 도와줄 것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라”고 일갈했다.

문승일 서울대 전기공학과 교수. 유튜브 캡처 (출처: 대한전기협회)
문승일 서울대 전기공학과 교수. 유튜브 캡처 (출처: 대한전기협회)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연료비뿐 아니라 여러 가지 환경·사회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이유진 박사는 “정당하고 합리적으로 사람들을 설득해서 환경·사회적인 비용을 부과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지난해 54일간의 장마와 전 세계의 기상재난 등을 예로 들며 “장마가 아닌 기후위기고 기후위기를 초래한 원인은 화석에너지의 과도한 사용이다. 이를 에너지 전환에 대한 비용 문제로 연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EU의 탄소국경조정이 올해 상반기에 제도를 만들어 2023년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에너지 사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에 대한 국제적인 비용이 부과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린피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국경조정제도가 도입될 경우 우리나라가 지불해야 할 비용은 6,000억 정도다. 이 박사는 이러한 세계정세 변화에 따른 전기요금체계의 진화는 필수적이라고 전망했다.

문승일 교수는 “우리나라는 태양광과 풍력으로 만든 그린에너지가 아주 비싼 수준”이지만 “대신 요금 하락이 매우 빠르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그린에너지 단가를 어떻게 하면 빨리 하락시킬 것인지에 집중해야 하며 이를 위해 인프라·제도 변경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문 교수는 “선택적 요금제를 적극 도입하는 방향으로 전기요금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며 “RE100 참여를 원하는 기업이 많다. 그린에너지를 사서 쓸 용의가 있는 이들 기업이 그린에너지를 구매하면 빠르게 가격 하락이 가능하다.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기업과 5년 이상 장기적인 계약 등 지금 즉시 정책을 만들어 시행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정부가 먼저 전기요금체계에 대한 확신 가져야

정형석 팀장은 “전기는 상품인데 우리나라는 공공재처럼 운영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부가 미세먼지 대책 시행과정에서 2천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전기요금 인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답이 60%였다. 국민 수용성을 담보로 적극적으로 설득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한전이 전기를 만드는 비용은 같은데 용도에 따라 판매하는 가격이 다르다”며 종합별 요금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 과정에서 중소기업이 타격을 입을 경우를 대비해 전력산업기간기금을 활용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현재 산업부는 에너지 바우처를 지급해 에너지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요금 상승 시 에너지 빈곤층의 부담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문승일 교수는 이 주제에 대해 “요금과 복지는 구분해야 한다”고 단호한 생각을 밝혔다. 전기요금은 “빈곤이 아닌 인원수와 관계있다”며 “전기요금은 정당하게 받고 에너지의 사용이 어려운 쪽은 복지로 구분해서 따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많이 사면 깎아주는 것이 시장의 원리인데 가정에만 누진제가 적용된다”며 산업용 전기요금과 가정용 전기요금의 모순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박사. 유튜브 캡처 (출처: 대한전기협회)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박사. 유튜브 캡처 (출처: 대한전기협회)

이유진 박사는 전기요금에 대해 서울시 10개 구 시민들과 토론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우리나라 국민들의 전기요금에 대한 오랜 인식을 바꾸려면 정공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어떻게 요금과 시장제도를 개편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논의를 끌어가야 한다며 “그 과정을 투명하게 열어서 시민들이 학습하면서도 함께 풀어나가는 주체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또 “정부가 느끼는 요금에 대한 두려움을 시민들도 거부감으로 느끼고 있다”며 “정부가 에너지 정책과 요금체계에 대해 어떤 확신이 있고, 어떤 방향으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하며 시민들을 설득할까에 대한 입장이 먼저 명확해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탈탄소전원, 분산형 배전반, 저장장치, 열·전기 섹터 커플링 등 연료비뿐 아니라 고정비용도 늘어난다”며 솔직하게 비용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박사는 “정부와 정치권이 지금의 상황을 초래했다”며 “이것을 헤쳐나갈 사고의 전환도 국민이 아닌 정부가 먼저 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편 신경휴 요금정책실장은 “개편된 전기요금체계가 안정적으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한전의 강도 높은 자구노력과 경영 효율화를 위한 비용 절감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국민 신뢰도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넷뉴스=정민아 기자] news@e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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