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준공돼 54년간 운영된 남한 최초의 수력 발전소 '운암 발전소'
해방 76년 지났지만 수력 발전소 부품 '열에 아홉'은 일제
단순 '자존심' 문제 아닌 '에너지 안보' 문제와 직결···한수원 등 국산화 T/F 구성

수력발전이란 물의 위치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댐 건설을 통한 방식이 가장 많이 채택되고 있다. 수력발전의 경우, 폐기물 발생 없이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해 친환경 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다. 순간적인 전력난 발생 시에도 발전기 가동 시간이 짧아 쉽게 대처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국내 수력발전의 경우, 대부분의 발전설비가 노후화되어 있고, 외국산 부품에 의존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넷뉴스>는 수력발전의 문제점 및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수력발전 산업에 집중해봤다.

<수력발전 산업분석> 시리즈

① 운암 발전소 이후 90년···’수력 독립’은 언제

② 댐 없는 수력 발전, 소수력 발전은 무엇

③ 에너지 안보와 안정, 수력발전에서 찾다

④ [수력발전 산업분석④] 국내외 양수 발전, 어디까지 왔나

[이넷뉴스] 1931년 전북 정읍시 산외면 종산리에 지어진 운암 발전소는 남한 최초의 수력 발전소다. 총 5,120킬로와트(㎾) 규모로, 1985년 노후화 문제로 폐쇄됐다. 반세기 넘게 5억㎾가 넘는 전력을 생산한 운암 발전소는 당대 최고 기술이 응집됐다. 안타깝게도 우리 힘이 아닌, 일제에 의해서였다. 90년이 흐른 지금도 상황은 비슷하다. 수력 발전의 핵심 기술 대부분을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 

◇ 한국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은 운암 발전소

운암 발전소는 1929년 12월 착공해 1931년 12월 완공했다. 군산 거주 일본인들의 전기 공급을 위해 설립된 남조선전기주식회사가 공사를 맡았다. 운암 발전소는 운암댐 취수구로 방류되는 섬진강 물을 발전에 활용했다. 전북 이리(현 익산)·군산·김제, 충남 강경 변전소까지 전력을 보낼 정도로 넓은 송전 범위를 자랑했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사고로 1호기가 파괴돼 35년간은 2호기로만 발전이 진행됐다. 

운암 발전소는 유역 변경식 발전소다. 유역 변경식 발전은 물의 위치 에너지, 운동 에너지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댐으로 물길을 막아 물을 모은 뒤 이를 경사가 급한 지역으로 흘려보내 전기를 일으킨다. 대표적인 유역 변경식 발전소로는 강릉 수력 발전소가 있다. 1991년 완공된 강릉 발전소의 시설 용량은 8만 2,000킬로와트(㎾)다. 운암 발전소의 16배 규모다. 현재는 주변 수질 악화 문제로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운암 발전소는 1985년 폐쇄된 뒤 종교 단체에 매각됐다. 수양 시설로 리모델링될 계획이었으나, 공사가 중단되며 사실상 방치 중이다. 지역 사회는 발전소 건물, 도수(導水) 터널 등을 관광 문화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원래 모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문화재 등록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수지인 운암제의 취수탑. (사진=한국농어촌공사)
양수지인 운암제의 취수탑. (사진=한국농어촌공사)

◇ 8·15 광복 이후 76년···’수력 독립’은 언제쯤 

운암 발전소가 건설된 1930년대는 일제 강점기였다. 당연히 건설도 일제에 의해 이뤄졌다. 발전소 스펙(Spec)은 현재 눈높이로 볼 때 초라해도, 당시 기준 최첨단에 해당했다. ▲수로 길이 2.7킬로미터(㎞) ▲유효 낙차 75.2미터(m) ▲발전 용량 5,120㎾로, 도수 터널에서는 초당 15톤(t)의 물이 쏟아졌다. 도수 터널은 물을 일정 방향으로 흐르게 하기 위해 산 등을 뚫어서 만든 물길이다. 물을 끌어다 쓰는 수력 발전에 꼭 필요하다. 

해방 이후 76년이 흘렀지만, 수력 발전 분야는 아직 ‘독립’이 절실하다. 수차, 발전기 등 수력 발전의 주요 설비는 여전히 히타치, 후지 등 일본 기업에 전량 의존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중대형 수력 발전소의 기자재는 100% 외국산 부품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노후 수력 발전소 현대화, 건설 사업에 투입된 기자재 가운데 92%는 일제였다. 국내 중급(15㎿ 이상) 발전소의 발전기 국산화 성공 사례는 단 1건(칠보수력 2호기)에 불과했다. 

국산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두산중공업 등 민간 기업은 물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등 공기업까지 개발에 나섰지만 가격, 기술 격차 등의 이유로 어려움을 겪었다. 다만 꾸준히 성과는 나오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해 10월 27일 수력 발전 핵심 부품인 ‘수차 러너(50㎽급)’의 완전 국산화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공사는 2030년까지 6,428억 원을 투입해 국내 10개 수력 발전소의 노후 설비를 국산 제품으로 교체할 계획이다. 

수자원공사가 최초로 100% 국산화에 성공한 '수차 러너'. (사진=한국수자원공사)
수자원공사가 최초로 100% 국산화에 성공한 '수차 러너'. (사진=한국수자원공사)

◇ 수력 부품, 장비 국산화는 ‘에너지 안보’와 직결

수력 부품, 장비 국산화는 단순히 ‘자존심’ 문제로 볼 수 없다. 에너지 안보(에너지를 안정적, 합리적으로 공급하는 것)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2019년 7월 이후 2년 넘게 현재 진행형인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좋은 사례다. 국내 수력 발전소 부품 10개 가운데 9개는 일본 제품이다. 일본과는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 이유로 언제든 부품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만큼 자구책 마련이 절실하다. 

한수원은 2019년 9월부터 수력 발전소용 외산 자재의 국산화를 추진하는 ‘부품, 장비 국산화 태스크포스(T/F)’를 조직해 운영하고 있다. 대내외 공모 등을 통해 국산화 대상을 발굴, 앞으로 3년간 1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협력 기업들과 연구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국산화 노력을 통해 협력사의 제조 경쟁력을 높이고, 민간의 신규 일자리 창출 및 산업 생태계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힘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동서발전도 지난해 3월부터 ‘소수력 발전기 제어 및 모니터링 시스템’ 국산화 개발에 착수, 제넥스엔지니어링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조속기 제어(PLC) 시스템 ▲유압 액추에이터 대체품 ▲조속기 제어반 ▲운전 모드별 조속기 추종 프로그램 등 각종 핵심 설비의 국산화를 추진한다. 동서발전 관계자는 “2021년 개발이 목표”라며 “완료 시 유지 보수 비용 절감 등 안정적인 설비 운영이 가능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넷뉴스=양원모 기자] ingodzone@e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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