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부활이 대세" vs "탄소중립 역행"···윤석열 정부 방향성 논의 필요
EU, 원전·LNG '택소노미'에 포함···尹정부 움직임 속도 낼 듯 2030년 원전비중 30%↑ 에너지 정책 의결···재생에너지 발전 목표 하향 조정 불가피 전 세계 신규 발전 84%는 재생에너지···원전 중심 정책은 시대흐름에 역행 지적 나와
[이넷뉴스 김그내 기자] 정부가 최근 에너지정책 방향을 확정 발표했다. 원자력발전 비중을 늘리고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 에너지 수입을 줄이는 기조가 분명해졌다.
현실성 있는 정책이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전 세계적인 친환경에너지 전환 추세에 급격한 ‘원자력 재가동’ 유턴이 혼란을 가중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 EU, 원자력 그린 택소노미 포함 확정···정부 “탈원전, 세계적 흐름에 부합”
원자력발전과 액화천연가스(LNG), 천연가스발전이 유럽연합(EU)에 의해 녹색산업 분류 체계인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됐다.
그 동안 원자력과 LNG 발전의 '그린 택소노미' 포함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여왔던 EU가 지난 6일 최종 결정안을 내놨다.
로베르타 멧솔라 유럽의회 의장은 “EU 의회는 2022년 5월 9일 제출된 유럽 집행위원회의 규정안인 원전·가스 녹색분류체계 포함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과도기적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었다.
단, 원전이 녹색에너지로 분류되려면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 시설' 계획을 세워야 한다. 또 2025년까지 사고 저항성 핵연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이를 두고 일부는 EU 택소노미 기준대로라면 사실상 할 수 없다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현 정부는 이미 국정과제에 원전을 K-택소노미에 포함하는 내용을 담았다. EU의 결정에 따라 우리 정부의 움직임도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환경부는 늦어도 내달 초까지 K-택소노미 개정안 초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개정안은 9월 중 확정 발표될 예정이다.
새 정부의 원전 부활은 이미 공식화됐다. 2030년 원전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는 에너지 믹스 재정립 계획은 지난 5일 확정 발표됐다. 심지어 ‘원전 최강국’을 선언했다. 원전을 다시 늘리는 게 세계적 흐름이라는 게 정부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EU가 그린 택소노미에 원자력을 포함하는 것을 의결한 것은 세계적으로 원전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며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정책 방향이 탈원전 중심 로드맵을 대체한 것은 세계적 흐름에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 ‘탈원전’ 찬반논란 여전
정부가 밝힌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은 에너지 믹스의 재정립과 관련해 가동 중인 원전이 현행 24기에서 2030년 28기로 늘어난다. 발전 용량도 23.3기가와트(GW)에서 28.9GW로 확대된다.
발전 비중 또한 현행 27.4%에서 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전 생태계 복원을 위한 일감은 연내 925억 원에서 1,300억 원으로 확대된다.
올 하반기 준공 예정인 신한울 1호기를 비롯해 신한울 2호기, 신고리 5호기, 신고리 6호기 등 현재 건설 중인 원전 4기를 2025년 상반기까지 준공하겠다는 게 정부가 세운 목표다. 아울러 원전 산업 활성화 기조에 발맞춰 신한울 3·4호기 조기 건설을 위한 즉시 환경영향평가를 개시하고, 내년 초 사전제작에 착수해 2024년 건설을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새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을 두고 기대와 우려가 극명하게 갈린다. 원전 활용이 막연히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계획하는 대신,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수단으로써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일거리 조기 창출과 원전 수출 등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탈원전으로 위축됐던 사업이 다시 활기를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원전 가동에 따른 안전성 문제와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용후 핵폐기물 등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를 둘러싼 우려감도 고조되고 있다.
방사능에 대한 안전성 논란은 지속돼 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금 원전업계는 전시다. 전시에는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는 발언으로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해당 발언이 논란이 되자, 산업부는 "원전산업 생태계 복원을 위해 적극적이고 비상한 각오로 업무에 임해달라는 취지"였다며, "원전정책의 기본 전제는 안전 확보"임을 밝혔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발생한 사용후 핵연료는 총 50만 4,809다발이다. 향후 국내 가동 중인 모든 원전의 설계수명 만료 시점까지 사용후 핵연료는 13만 520다발로 늘어나 총 63만 5,329다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원전 가동 중인 대부분 국가에서는 사용후 핵연료를 지하 500~1000미터(m) 깊이의 심지층에 매립하는 식으로 처분한다. 전 세계적으로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을 가동하는 나라는 없다. 핀란드, 스웨덴, 프랑스가 부지를 확보하고 있을 뿐이다.
사고 저항성 핵연료는 사고 시 위험성을 저감하기 위한 핵연료로 미국에서도 초기 실험 단계이고 상용화 여부가 불확실한 단계다.
정부는 원전 확대를 못 박았다. 하지만 방사성폐기물은 관련 법안조차 제정되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핵폐기물 대책부터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 되는 대로 국무총리 산하의 관리위원회를 만들어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영구저장시설 부지를 선정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현재 37년 이내 영구처리시설을 만든다는 목표만을 제시한 상황이다. 대상지로 거론된 원전 주변 지역의 반발로 인해 타협점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원전에 집중된 '새정부 에너지정책'···”한국 탄소중립 뒤처질 것” 우려 나와
특히 ‘기후변화 대응’의 당위성이 떨어진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정부는 원전의 당위성으로 기후대응을 언급했다. 하지만 정작 재생에너지 계획은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녹색연합은 "명분상 기후변화 대응을 에너지정책의 주요 방향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온실가스의 주요 배출원인인 화석연료의 구체적 퇴출 전략은 제시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도 "러시아, 중국 등의 수입에 의존하는 우라늄이 재생에너지보다 에너지 안보에 효과적이라는 오판을 저지르고 있다"며 "기후위기를 핵위험으로 막아보겠다는 아둔한 입장의 철회를 촉구한다"고 비판했다.
‘탈원전’을 강력히 추진해왔던 문재인 정부는 원전 비중을 24%로 낮추는 대신, 재생에너지 비중을 6%에서 3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식 선언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11월 세계 각국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40% 감축에 대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현재 발표된 정책에 따라 원전 비중이 30% 이상으로 확대된다면, 재생에너지 비중은 그그만큼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재생에너지와 관련해서 현 정부는 "실현 가능성과 주민수용성 등을 감안해 ‘합리적 수준’으로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 확대 방침 등을 고려했을 때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대로 낮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흐름은 국가 존망의 문제다. 산업뿐만 아니라 민생경제의 안정적 관리에 있어서도 에너지 정책이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더욱이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전 세계 평균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 새로 지은 전세계 발전설비 84%는 재생에너지였다. 재생에너지 가격이 원전이나 석탄보다 빠르게 떨어져 더 낮아지고 있는데, 시대흐름에 뒤처질 우려가 있다.
국제 에너지 연구기관 엠버에 따르면, 지난해 풍력·태양광 발전 비중의 세계 평균 수치는 10.3%이었다. 우리나라는 4.67%로, 풍력·태양광 발전이 높은 덴마크(51.8%)와 비교했을 때는 10분의 1 수준도 되지 않는다.
풍력·태양광 발전비율이 10% 이상인 나라는 총 50개 국에 달한다. 덴마크를 비롯해 스페인(32.9%), 독일(28.8%), 영국(25.2%)이 높은 발전 비중을 보인다. 중국(11.2%), 베트남(10.7%), 몽골(10.6%), 일본(10.2%) 등 아시아권 국가들도 지난해 10% 이상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화력이나 원자력 발전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들은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국제 캠페인인 ‘RE100’ 에 참여하고 있다. 애플, 테슬라 등은 동참하지 않는 기업 제품은 쓰지 않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문제는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가 RE100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RE100·탄소국경세 등 규제가 도입되는 상황”으로 “원전 확대 정책이 장기적으로 기업에 부담을 주는 등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2021년 기준 전력소비량 상위 30개 기업이 필요로 한 전력량은 102.9테라와트시(TWh)다. 그에 비해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한참 부족한 43.09TWh다.
10년 전 20%였던 전 세계 재생에너지의 발전비중은 28%까지 늘어났다. 원전은 12%에서 10%로 줄어들었다. 이미 재생에너지가 원전의 3배나 된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크게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원전 확대가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예측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분석이다.
재생에너지 전문가는 “EU가 녹색 분류체계 원전을 포함했다고 해서 온전히 친환경에너지라고 여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하며, “유럽의회 상임위원회는 원전과 천연가스를 녹색 기술로 분류하는 것에 제동을 건 것은 본질적으로 녹색 기술이 아니라고 결의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과도기에 필요할 수는 있지만, 단기적 상황에 맞춘 게 아닌 장기적이고 좀더 구체화된 에너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넷뉴스=김그내 기자] snowcat74@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