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을 보면 도시가 보인다···"인공↓·자연 친화적 공간으로 나아가야"

하천 살리기 나선 지자체와 경쟁적으로 등장하는 하천 관련 공약 "사업 취지 잃지 말아야

2022-05-28     김범규 기자

[이넷뉴스] 도시의 대부분은 하천을 끼고 있다. 그 이유는 예로부터 하천의 물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여 살게 되고, 이에 따라 도시가 생성됐기 때문이다. 

과거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하천은 이제 생태복원을 통해 다양한 동식물의 삶의 공간이 되고 있고, 인간에게는 휴식과 여가를 제공하는 정서적 생활공간으로서 그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최근 각 지자체에서는 하천 재생 사업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지방선거에서도 중요 공약으로 대두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청계천 복원 공사가 완료된 후, 청계천은 시민들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 지자체, 도심하천 정비로 환경 친환 도시로 재도약 

2003년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던 청계고가로를 철거하며 청계천의 복원사업이 시작된 지 2년만인 2005년 5.8킬로미터(km)에 달하는 청계천 복원 공사가 완료됐다. 당시 대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규모의 친수공간이 탄생했다는 점에서 서울 시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의 관심은 청계천과 각 도시의 하천으로 향했다. 

이후 산업화 시절 도시 개발로 인해 오물로 넘쳐나던 도심 하천을 예전의 모습으로 되살리려는 생태 하천 복원 시도가 잇따랐고, 도시마다 생태 하천을 만들겠다는 구상이 추진됐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하천은 자연 친화적 친수공간이기보다는 하천 복원이라는 목표에만 치중한 나머지 인공적인 면모가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최근에는 각 지자체가 앞다퉈 도심 하천을 정비해 주민에게는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동식물에는 생태공간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야심 차게 발표하고 나섰다.

서울시의 하천 마스터 16명이 전담할 하천 노선도. (사진=서울시)

서울시는 하천 분야에 전문 지식과 경험이 있는 민간 전문가들이 서울 시내 35개 하천을 전담 관리하는 ‘하천 마스터’ 제도를 시작한다. 하천 마스터는 하천별로 민간 전문가를 지정해 관리하는 제도다. 

시는 기존에 해빙기, 홍수기 전·후 등에 맞춰 실시하던 하천 시설물정기점검에 더해 이번 ‘하천마스터’까지 운영함으로써 하천관리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하천을 촘촘하게 관리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우선, 시는 내달 9일까지 하천 마스터 모집 공고를 낸 뒤, 총 16명을 선정한다. 선발된 하천 마스터들은 7월부터 현장에 투입되는데, 앞으로 2년간 하천 현장을 직접 순찰하며 시민들이 느낄 수 있는 불편 요소, 위험 요소를 꼼꼼하게 점검하고 문제점을 분석하고, 서울시에 하천 분야 전반에 대한 대책을 제시한다. 또, 시가 하천 정기점검을 할 때도 동반 참여하며 자문도 한다. 

울산시는 최근 ‘여천천·태화강역 친환경 생태공원 조성 방안’을 마련, 여천천과 삼산·여천 매립장, 돋질산 일원을 다시 자연이 살아 숨 쉬고 시민이 즐길 수 있는 친환경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을 밝혔다.

먼저 여천천 하류에 여천하수처리장을 2027년까지 건설할 예정이다. 도시개발에 따른 하수량 증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기존의 관로를 활용해 고도정화 처리된 방류수를 공업탑 인근에서부터 여천천으로 하천 유지수로 공급한다. 이를 통해 시는 현재보다 2~3배가량의 유량의 확보돼 물의 흐름과 수질 개선을 기대했다.

동시에 삼산·여천 매립장, 돋질산 여천공원 일원에 울산의 대표 생태숲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삼산·여천 매립장 부지는 태화강과 여천천이 만나는 지역으로 70년대 말까지는 자연 상태의 습지였으나, 80년대 초부터 90년대 초까지 10여 년간 지역의 쓰레기를 매립하면서 자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곳이다. 

울산시는 이 부지에  ‘숲의 바다’라는 이름의 울산 대표 생태숲을 조성할 예정인데, 메타세쿼이아와 은행나무로 이뤄진 ‘선사의 숲’, 대나무와 억새, 갈대, 상록수와 활엽수를 활용한 ‘현재의 숲’으로 조성하고, 여천천과 연계하여 수생식물원과 산책로, 전망대 등도 만들어 시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선거 주요 공약으로도 등장···‘하천’ 복원의 원래 취지 잃지 말아야

하천이 도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주요 수단으로 올라서면서 6.1 지방선거에서도 주요 공약으로 등장하고 있다. 

파리의 세느강. (사진=픽사베이)

박상돈 천안시장 후보(국민의힘)는 천안천 원성천을 비롯한 천안 도심 5개 하천을 재조성하겠다고 공약했다. 박 후보가 벤치마킹하는 컨셉은 파리의 세느강이다. 그곳에서 매년 여름마다 도시민이 바캉스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행사인 ‘파리플라주(Paris Plage)’를 예로 들며 시민들의 삶에 여가와 쉼을 제공하는 하천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인천시장 유정복 후보(국민의힘)는 인천 5대 하천인 굴포천, 공촌천, 나진포천, 장수천, 승기천을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총사업비 2,000억 원을 들여 수질을 복원하고 주변을 정비해 시민이 물장구를 치고 헤엄칠 수 있는 수준의 냇가로 복원하는 것이 목표다. 또 시민단체, 전문가, 어린이·주민 등의 의견을 반영해 친수공간, 자전거길, 둘레길, 체육시설도 설치할 계획이다.

김동연 경기지사 후보(더불어민주당) 역시 도심 악취와 축산악취 해결, 교통소음 완화, 맞춤형 침수 대응 시설 설치, 주민 친화형 생태하천 복원사업 및 하천 주변 여가 공간 조성 등 쾌적한 생활환경을 위한 환경 공약을 제시했다.

백군기 용인시장 후보(더불어민주당)는 처인, 기흥, 수지구 3개 권역별 균형발전 비전을 공약하며 녹색도시 조성 계획안을 발표했다. 우선 수지구의 5대 하천과 4대 공원을 길게 이은 23km 길이의 도심 속 녹지 축을 만들어 시민들의 힐링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죽은 하천을 살리는 일은 미관상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생태공간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힐링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최근 공약으로 내세워지는 하천의 모습이 다양한 어종과 수초, 동식물이 찾는 자연공간으로서의 하천을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다수 도시의 하천 관련 사업안을 보면 도시민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역할과 다양한 디자인이 어우러진 트렌디함에 초점이 맞춰져 정작 하천을 살려야 하는 원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천은 존재 자체만으로 인간과 동식물에게 열린 생활 공간이 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해외의 멋진 하천을 벤치마킹하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우리나라 특성에 맞게, 또 제철마다 그곳을 찾아오는 동식물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자연 친화적 친수공간으로서 재생 사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넷뉴스=김범규 기자] beebeekim1111@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