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원전 최강국' 공약···원전 활용 ‘핑크수소’로 실현되나
핑크수소, 수소경제 만능 키 될까? 원전 기반 수소생산 kg당 2,000~3,000원대로 미국·영국·프랑스 등도 원전 투자 늘려 수소 생산, 원전 활용해 가격 경쟁력 갖춰야
[이넷뉴스] 원자력 발전이 ‘수소경제’ 활성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주요국들은 원전과 연계한 이른바 '핑크수소' 생산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차기 정부의 원전 중심 에너지 정책에 따라 이를 기반으로 한 수소 인프라 구축이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 탈원전 폐기로 저비용·탈탄소 양립 가능한 ‘핑크수소’ 주목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당시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과 ‘원전 최강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새 정부 출범일을 10여일 앞두고 윤 당선인은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를 못 박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는 28일 브리핑을 열고 ‘에너지 정책 정상화를 위한 기본 방향과 5대 중점 과제’를 발표했다.
인수위는 국제적으로 약속한 탄소중립 목표를 존중하되 원전을 활용해 실현 가능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원전의 계속 운전, 이용률 조정 등을 통해 2030년 원전 발전 비중을 상향할 계획이다.
원자력 발전을 주요 수단으로 한 차기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예고됨에 따라, 원전과 연계한 이른바 '핑크수소' 생산 기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수소는 생산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되는 정도에 따라 분류된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만드는 그린수소, 천연가스(LNG)를 개질해 추출한 그레이수소, 그레이수소의 탄소를 포집해 저탄소로 만드는 블루수소, 원전에서 생산되는 핑크수소 등이다.
탄소중립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저렴하고 깨끗한 수소를 생산해야 한다. 현재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수소의 대부분은 그레이수소다. 1킬로그램(kg)당 1달러(약 1,100원) 정도로 저렴하지만 제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때문에 탄소중립 실현 달성을 위해 각국에서는 수소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발생이 전혀 없는 그린수소 생산에 집중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블루·그린수소 중심으로 수요가 이동하고 있으나 원재료인 천연가스와 청정에너지 발전원 단가가 높아 구조적인 경쟁력 열위가 불가피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전망에 따르면 현재 9,000만 톤 정도인 수소 수요는 지속 확대돼 2050년 5억 2,0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제1차 수소경제 이행계획에 따르면 2030년 390만 톤, 2050년 2,790만 톤의 수소가 필요하다.
현 정부의 수소생산 계획은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간헐성과 높은 생산비용 등으로 인해 수소 가격을 낮추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산업계에서는 현실적으로 그린수소만으로는 미래의 수소 수요를 충당할 수 없기 때문에 청정수소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그린수소 자급을 위한 발전원의 가격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원자력 발전과 같은 저탄소 발전원 활용이 대안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 수소 생산 단가, 그린수소가 원전보다 5배 비싸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중부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제주 풍력발전 연계 그린수소 생산 실증사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상명 그린수소 생산 설비에서 61일간 706kg의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 4만5,443킬로와트시(kwh)의 전력이 사용됐다.
수소 1kg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전력 소비량은 64.3kwh였다. 지난달 평균 제주도 전력도매가격(SMP)인 kwh당 229.5원을 적용하면 수소 1kg을 생산하는데 1만 4,727원의 전기 요금이 들어간 셈이다. 전기 요금 외 설비 투자비, 운영비를 등을 포함하면 풍력을 이용한 그린수소 생산에는 더 큰 비용이 투입된다.
반면, 원자력발전을 활용해 수소를 만들면 수소 생산 단가가 낮아진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자력발전으로 만들어내는 청정 수소 1kg의 단가를 2.5달러(3,105원)로 제시한 바 있다. 미국 아이다호국립연구소는 2.3달러(2,856원)가 투입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린수소 생산설비에서의 수소 생산과 비교해 약 20%수준이다.
국내 원전의 경우 발전원가가 낮아 원전 계속 운영으로 수소를 만들면 1.7달러까지 줄일 수 있다고 원자력 업계는 내다봤다.
업계 전문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적은 우리나라는 그린수소 가격 경쟁력이 뒤처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면서 “발전 단가가 낮은 원전 기반의 핑크수소가 그린수소의 단점인 경제성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미국·유럽 등도 원전 기반 수소 생산 본격화
청정수소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미국과 유럽, 러시아 등에서는 원전을 활용한 수소 생산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미국 최대 원전 운영업체 컨스텔레이션에너지는 수소 제조장치 업체 노르웨이 넬하이드로젠 등과 연내 뉴욕주 나인마일포인트 원전에서 수소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애리조나주와 오하이오주 등 다른 지역 원전에서도 수소 제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수소 전략에서 수소를 제조하는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 등과 함께 원자력을 명기했다. 차세대 원전인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에 나선 롤스로이스는 이를 수소 제조에도 활용한다고 밝혔다.
프랑스도 원전 회귀 움직임을 보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50년까지 원자로 6기를 신설한다”고 발표하면서 원전을 통한 수소도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는 의향을 드러냈다. 러시아 국영 원자력회사 로스아톰은 2023년 서부 코라 원전에서 수소 제조를 시작한다.
◇ 그린수소 대안 가능성 충분하지만···해결 과제 산적
일각에서는 원전의 안전성과 핵폐기물 발생 등을 문제 삼고 있다. 해결해야 할 숙제도 있다. 원전의 전기와 증기를 이용하려면 안전성 인허가가 필요하다. 법적인 측면에서 원자력 사업과 수소 사업의 연계도 보장돼야 한다.
현행법상 원자력 사업자가 수소 생산을 겸할 수 없다. 전기사업법은 발전 사업자의 겸업을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만 인정하는데, 해당 조항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의 수소 생산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박찬오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원전을 활용한 수소 생산을 위해 규제개선과 인프라 구축, 수용성 제고 등을 위한 중장기적 전략 마련과 실행이 필요하다”며 “수소법, 전기사업법, 녹색분류체계 등 관련 볍제도 개선을 통해 원자력 수소 개발·실증·사업이 용이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넷뉴스=김그내 기자] snowcat74@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