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생에너지 비중 70% 폐기···’친원전’ 유턴
문 정부 에너지 정책 대수술 불가피 원전 복원과 에너지 안보 강화가 에너지 정책 핵심 국제적으로 원전 유턴 가속화
[이넷뉴스] 새 정부 출범 이후 기존 탈원전 정책이 힘을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5일 문재인 정부의 ‘205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 70%’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복원과 에너지 안보 강화를 에너지 정책 핵심으로 정했다. 앞으로 달라진 원전 정책과 더불어 이미 지구촌 곳곳에서 확산되는 원전 회귀 움직임을 짚어본다.
◇ 에너지기본계획 재수립, 신재생에너지 비중↓원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 5일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기본계획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안을 발표했다. 인수위는 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70%까지 끌어올리는 기존 정책을 폐기하고 에너지 정책 기조를 ‘안보와 원전’ 중심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문 정부는 그동안 탈원전과 탄소중립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왔다. 하지만 차기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비중 목표치를 줄이고 현실적인 전력 수급 계획을 다시 세운다는 입장이다.
에너지기본계획이 재수립되면 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 70% 확대 및 원전 비중 6.1% 축소를 핵심으로 한 문 정부의 에너지 정책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에너지기본계획은 정부가 에너지 정책의 기본 원칙에 따라 20년을 계획 기간으로 두고 5년마다 수립하는 에너지 분야 최상위 법정계획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 해외자원개발기본계획, 신재생에너지기본계획, 에너지이용합리화계획, 에너지기술개발계획, 석유비축계획 등 에너지기본계획의 구속을 받는 하위 계획도 10여 개에 이른다.
원칙대로라면 2024년 다시 세워져야 하지만 2년 앞당긴 올해 에너지 정책을 원전 중심으로 다시 정립한다는 게 새 정부의 구상이다.
또 이에 기반해 올해 말까지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새롭게 세운다. 에너지기본계획을 앞당겨 수정 시 논란의 여지가 있어 올해 말 예정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곧바로 ‘원전 비중 확대’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건 ‘탈원전 폐기’ 이행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2019년 6월 심의·확정된 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문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과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금지를 공식화했다.
인수위는 에너지기본계획 수정 없이는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 재개, 노후 원전 계속 운전 등 윤석열 당선인의 핵심 공약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 ‘원전강국 재도약’ 눈앞에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국내 원전산업은 크게 위축됐다. 뛰어난 기술력으로 세계적 원전강국으로 인정받았지만, 현재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등으로 주도권이 넘어간 상태다.
윤 당선인의 탈원전 백지화 의지가 확고한 만큼, 그간 침체했던 국내 원전 산업에 모처럼 활기가 돌 것으로 전망된다.
원전 관련 기업들은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두산중공업을 비롯해 삼성물산, 현대엔지니어링 등은 소형모듈원전(SMR)을 신성장 동력으로 보고 투자를 이미 시작했다. 소형모듈원전(SMR)은 대형 원전보다 크기가 작고 안전성이 높아 차세대 원전으로 꼽힌다. 또 유럽연합(EU)이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하면서 원전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기업들의 기대감도 한껏 높아졌다.
◇ ‘친원전’ 유턴은 세계적인 움직임
윤 당선인의 탈원전 백지화 추진 방안은 세계적인 원전 회귀 흐름에 더 힘을 얻고 있다. 미국과 중국, 영국 등 주요국들이 잇달아 ‘친원전’ 정책을 채택하면서 지구촌 곳곳으로 원전 회귀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는 2050년까지 최대 14기의 신규 원전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친환경 에너지는 원자력을 거쳐 간다”면서 원전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은 일부 원전의 수명을 60년에서 80년으로 20년 연장하고, 2230메가와트(㎿) 규모의 신규 원전 2기를 추가 건설하는 등 원전산업의 영역 확대에 나섰다.
중국도 원전 확대에 적극적이다. 중국은 2036년까지 최대 4,400억 달러(약 537조 8,000억 원)를 투입해 150기의 원전을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지난 35년 동안 전 세계에 지어진 원전보다 많은 수다. 일본 역시 전체 전력 공급의 원전 비율을 2018년 2%에서 2030년까지 최대 22%로 확대할 방침이다.
영국 정부는 최근 에너지 자립을 위해 2050년까지 최대 7기의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2025년까지 원전 7기를 모두 폐쇄하는 방안에 합의한 벨기에도 최근 공급망 리스크가 커지자 원전 설계수명 연장 검토에 나섰다.
◇ 원전 주요국, SMR 도입 본격화
전 세계적 원전 회귀 흐름에 세계 SMR(소형모듈원자로) 시장도 주목되고 있다. SMR 시장이 2035년 본격 개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 러시아 등 원전 주요국들의 각축전이 펼쳐지고 있다. 2021년 9월 기준, 전 세계에서 71개 SMR 노형이 개발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최근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에 원자력발전을 포함하는 최종안을 확정했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이 본격화하고 있는 원전 확대 기조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영국 국립원자력연구소는 2035년까지 전 세계에서 SMR 650~850기 건설이 추진돼 시장 규모가 2,400억~4,000억 파운드(약 379조~632조 원)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한국은 2012년 SMR 개발에 성공해 표준설계인증까지 받았으나 아직도 상용화에 이르지 못했다. 뒤늦게 '혁신형 SMR(i-SMR)' 기술 개발에 나섰지만 탈원전 정책으로 상용화가 지지부진했던데다 국내 실증이 막혀있어 결국 후발국에 추월 당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탈원전 정책의 결과로 원전산업 강국은 옛말이 됐다”며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합리적이고 일관된 정책으로 원전 생태계 부활을 도모해야 할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원전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탈원전에 대한 기조 변화가 감지되는 가운데, 원전에 대한 논쟁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차기 정부가 원전 확대를 골자로 한 에너지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여러 우려사항의 해소 노력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넷뉴스=김그내 기자] snowcat74@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