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경제의 시작 ‘배출권거래제’···“계획은 있지만, 수립은 힘들다”

배출권거래제 참여기업 매년 증가···비용과 기술력이 발목 잡아

2022-03-24     김범규 기자

[이넷뉴스] 2050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법정 절차와 정책 수단을 담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 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시행령 안’이 최근 국무 희회를 통과하면서 우리나라는 2050 탄소 중립 비전을 법제화한 14번째 국가가 됐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달리 기업에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기간에 감축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정책 이행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이고도 장기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기업은 온실 가스 감소 정책 이행을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이고도 장기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픽사베이)

◇ ‘배출권거래제’로 온실가스 전년비 5.7% 감소···코로나19 영향 커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탄소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지속 가능한 저탄소 경제구조로 바꾸는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그 중심에는 산업부문의 혁신은 필수다. 

그중 하나가 배출권거래제다. 배출권거래제란 온실가스를 대규모로 배출하는 사업장이 정부로부터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할당받아 그 범위 내에서 감축을 하되, 할당량이 남을 경우 다른 기업에게 남은 할당량을 판매할 수 있고, 반대로 할당량이 부족한 경우 다른 기업으로부터 할당량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우리나라의 배출권거래제 대상 물질은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황(SF6)이며, 5년 단위로 배출권을 할당하고 이행실적을 관리한다. 

우리나라 배출권 시장에서는 할당 배출권, 상쇄배출권, 외부 사업 감축량 등이 거래되고 있다. 할당 배출권은 할당 대상 업체에 할당된 온실가스 배출권으로 이행 기간이 종료된 후 배출권 제출 의무를 이행하는 데 쓰일 수 있고, 잉여 배출권이 있는 경우 다른 할당 대상 업체에 판매하거나 이월할 수 있다.

상쇄배출권은 외부 사업 온실가스 감축량에서 전환된 배출권으로 외부 사업 온실가스 감축량은 할당 대상 업체의 전환 신청 후 정부의 승인이 있으면 상쇄배출권으로 전환된다. 상쇄배출권 역시 할당 대상 업체의 배출권 제출 의무 이행에 사용될 수 있고, 이월도 가능하다. 

외부 사업 감축량은 배출권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로서 배출권 시장에서 거래된다. 외부 사업 감축량은 사업장 밖에서 국제적인 기준에 따라 온실가스를 감축, 흡수 또는 제거해 정부로부터 인증을 받은 감축 실적을 말한다. 외부 사업 감축량이 배출권 제출 의무 이행에 사용되려면 상쇄배출권으로 전환 신청한 후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우리나라의 배출권 거래소는 증권 및 파생상품시장 운영에 전문성을 가진 한국거래소가 운영한다. 배출권을 시장(배출권 거래소)에서 매매하는 주된 거래방법은 단일가로 매매하는 방법과 실시간으로 매매하는 방법이 있다.

배출권거래제의 기본 목적은 재생에너지 전환에 있다. 배출권거래제 적용부문의 배출 허용총량이 줄어들어 유상·무상으로 할당되는 배출권의 수량도 줄어들면, 산업계도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실제로 온실가스종합 정보 센터에 따르면 배출권거래제 대상 업체 수는 2018년 586개에서 2019년 610개, 2020년에는 636개로 증가했고,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보다 5.7% 감소한 5억 5,440만 톤(t)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산업부문에서는 기업의 생산량 감소와 고효율 설비 교체, 연료 전환 등의 노력으로 전년대비 1.2% 감소했다. 상업·학교 건물 등이 포함된 건물부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영업시간 감소, 비대면 강의 활성화 등으로 배출량이 전년보다 4.4% 줄었다. 항공수송 부문은 건물부문과 같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신규 항공사업과 운항 횟수가 축소돼 배출량이 21.7% 감소했다.

배출권거래제 참여기업의 91.6%가 탄소 중립 목표를 수립했다고 답했지만, 실제 탄소 중립을 추진 중인 기업은 26.3%에 그쳤다. (사진=픽사베이)

◇ 정부의 과감한 지원 없으면 탄소 중립 어려워

문제는 배출권거래제의 실효성이다. 우리나라의 현재 유상할당률은 0.6%에 불과하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2020 배출권거래제 운영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무상할당률은 99.4%에 달했다. 많은 전문가는 이는 국내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럽연합(EU)이 내년부터 탄소 국경 조정 제도(CBAM)를 통해 수입품에 탄소세를 시범적으로 매기기로 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수출 산업 전반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EU는 수출 기업이 자국 내에서 정당한 탄소 비용을 지불했을 경우, 이를 CBMA에 반영한다는 입장이어서 우리 정부가 배출권 유상할당 기준을 일정 수준까지 올릴 필요가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배출권거래제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의 대다수가 여전히 투자 비용 부족, 탈탄소 기술 등 감축수단 부족과 인프라 부족을 호소하며 탄소 중립 이행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배출권거래제 참여기업 346개사를 대상으로 ‘배출권거래제 참여기업의 탄소 중립 이행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91.6%가 탄소 중립 목표를 수립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실제 탄소 중립을 추진 중인 기업은 26.3%에 그쳤다. 응답기업의 47.4%는 ‘아직 계획이 없다’고 답했고, 26.3%는 ‘추진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처럼 계획 수립과 실행 과정에 있어 다른 속도를 내는 이유는 뭘까. 기업이 꼽은 사업 추진 애로사항으로는 투자비용에 대한 고민이 34%로 가장 많았다. 27%는 탈탄소 기술 등 감축수단 부족을, 15%는 재생에너지 인프라 부족을 꼽았다. 정책의 불확실성 및 불합리한 규제를 원인으로 지목한 기업도 14%에 달했다. 관련 정보가 부족하다고 말한 기업도 9.5%나 됐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설문조사를 통해 “정부의 탄소 중립 목표에 발맞춰 계획을 수립하고 있지만,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애로사항이 많다”라고 호소했다.

이들 기업들은 탄소 중립 이행 과정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는 정부는 적극적으로 기업에게 투자 및 기술 개발, 재생에너지 기반 구축 등의 지원책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중에서도 기업이 가장 필요한 지원 분야는  ‘기존 설비 효율 향상 기술’을 가장 많이 꼽았고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생산기술’, ‘공정가스 대체·저감 기술’, ‘자원순환 기술’,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기술’ 등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 김녹영 탄소 중립 센터장은 “해외 제조기업들은 저탄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규모 R&D와 설비투자를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라며 “기업이 주도적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해달라”고 말했다.  

[이넷뉴스=김범규 기자] beebeekim1111@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