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부터 중동·아프리카까지···수소경제 경쟁 가속화, 주도권은 누가?
세계 주요국들, 그린수소 수소정책 핵심과제 저비용·고효율 그린수소 생산기술 개발에 주력 2030년까지 수소경제 총 투자액 3,000억 달러 넘어설 전망
[이넷뉴스] 인류를 위협하는 기후 변화로 인해 세계 경제와 에너지 분야의 변화와 혁신이 요구되고 있다. 수소는 그 흐름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세계 주요 국가들의 수소경제 발걸음이 바빠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2021년 2월 수소협의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30여 개국의 국가 수소전략이 발표되면서 전 세계 수소사업 투자규모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2030년까지 총 투자액이 3,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이 중 85%는 유럽, 아시아, 호주에 위치한 228개의 대규모 프로젝트들로 구성돼 있다.
특히 그린수소는 한국을 비롯해 수소경제를 추진하고 있는 국가들의 수소정책 핵심과제다.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면서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이산화탄소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그린수소 생산 기술력을 높여야 한다.
◇ 원자력과 그린수소에너지의 절충 모색하는 프랑스
전 세계가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수소 생산 능력 확보에 집중하는 가운데, 청정수소 에너지 리더 국가를 목표로 그린수소 공급망 인프라 구축에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 주목을 끄는 나라가 있다. 프랑스는 수소경제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로 탄소중립 시대 에너지 분야 주도권 확보에 주력해 왔으며, 현재 유럽을 넘어 전 세계 탄소중립의 리더로 급부상하고 있다.
프랑스 수소협회에 따르면 2030년까지 프랑스의 연간 수소 소비량은 68만~109만톤으로 전망된다. 이중 60%를 그린수소로 채우겠다는 것이 프랑스의 계획이다. 이를 위해 10년 내에 그린수소와 수소 연료전지, 관련 설비 등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수소 기가 팩토리' 2개를 지을 계획이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대규모 확대와 함께 원전을 활용한 수소 생산도 염두에 두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빠르면 2022년 내 일평균 1t의 그린수소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루 300kg의 그린수소가 생산되는 셈이다. 프랑스의 일 생산량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단연 최고 수준으로, 그 중심에 그린수소의 생산만을 목적으로 하는 스타트업 리페(Lhyfe)사가 있다.
그린수소의 생산만을 목적으로 하는 스타트업 리페는 풍력, 수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바탕으로 그린수소를 생산하고 있다. 미국 플러그 파워와 제휴해 개발한 고분자전해질(PEM) 방식의 수전해 설비를 출력이 일정치 않은 풍력발전기에 직접 연결해 그린수소를 뽑아내는 게 리페의 핵심 기술이다. 프랑스 북서부 해안 라 크루아식에 조성한 세계 최초 해상 그린수소 생산공장이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리페는 2024년까지 그린수소 생산공장을 10MW 규모로 확대하고 이후 수백 MW 규모의 다양한 탄소중립 전력과 연결할 계획이다.
프랑스는 수소경제 분야에 향후 10년간 91억유로(한화 약 12조4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여기에 항공이나 교통수단 발전 기금까지 더하면 수소경제에 투입되는 자금은 100억유로(13조6000억원)에 달한다.
◇ 미국, 그린수소 생산비용 낮추는데 주력
미국 역시 수소강국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최근 미국은 그린수소 활용성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여겨지는 생산단가에 대한 계획을 밝혔다.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는 기술의 진보와 함께 경제성도 빠르게 개선되는 추세이지만 현재 그린수소 생산단가는 그레이수소의 4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세운 목표는 10년 안에 청정수소 1kg을 1달러에 생산하겠다는 것. 지난해 기준 미국의 수소 생산 비용이 kg당 5~5.3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10년 안에 5분의 1 수준으로 비용이 낮아지게 된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2030년 미국의 수소 생산비용이 kg당 3~3.2달러일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보다도 낮다.
미국 내 수소와 연료전지 관련 60개 이상의 기업과 단체를 대표하는 FCHEA(연료전지 및 수소에너지협회)의 프랭크 월락(Frank Wolak) 대표는 "미국은 에너지 어스샷 목표를 이루기 위한 첫 단계로 저탄소 수소에 더 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새로운 청정수소 생산 크레딧 제정을 앞두고 있다"며 "크레딧이 제정되면 청정수소를 kg당 3달러에 생산하는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수소경제를 위한 투자도 공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통과된 1조20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법안에는 청정수소의 생산비용을 낮추고 수소 상용화를 돕기 위한 95억 달러(약 10조8000억원)의 투자금이 포함됐다. 인프라법안에 따라 미국 연방정부는 청정수소 허브에 80억 달러를 지원하고, 청정수소 생산·전달·저장·사용 장비를 연구하고 실증하는 데 5억 달러를 지원한다. 또 전기 분해로 수소를 생산하는 전해조 연구개발 보조금으로 10억 달러를 지급한다. 이외에도 2차 인프라법안으로 불리는 BBB(Build Back Better)까지 통과되면 그린수소 생산과 사용에 대한 민간 투자까지 지원할 수 있다.
미국 에너지부(DOE)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미국은 연간 약 1000만 톤의 수소를 생산했는데, 이는 전 세계 생산량의 14%에 해당한다. DOE는 수소를 1kg당 1달러에 생산하게 되면 청정수소 사용량이 현재보다 최소 5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 호주, 사우디, 칠레 등은 탁월한 입지 바탕으로 '수소 수출국' 선언
그린수소 생산은 개발 기술과 더불어 환경적 여건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그린수소는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에서 나온 전기로 물을 분해해 생산된다. 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가 풍부한 사우디 등 중동지역 국가와 광대한 국토, 풍부한 일조량, 강한 바람 등의 지리적 환경을 갖춘 호주, 러시아, 칠레 등은 수소를 대량 생산해 수출국 지위를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또 이들 국가는 수전해 또는 CCUS 기술 상용화를 통해 청정수소 생산비용을 대폭 낮출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오는 2050년까지 그린수소 생산비용이 1kg당 1~2.5달러를, 블루수소 생산비용은 kg당 1~2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호주는 26GW급 그린수소 생산 프로젝트(AREH; Asian Renewable Energy Hub)를 비롯해 오는 2040년까지 200GW 규모의 초대형 재생에너지 시설을 구축하고 그린수소 수출에 나설 계획이다. 지리적 여건 상 그린수소 생산에 한계가 있는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과 북미, 유럽으로 수소 수출시장을 넓힐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사우디 그린 이니셔티브 포럼에서 사우디 에너지 장관은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최대 수소 수출국으로 변신할 것이라는 목표를 밝혔다. 사우디는 청정수소를 암모니아 형태로 수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019년 9월 세계 최초로 일본에 블루 암모니아를 수출한 사우디는 ‘SAUDI VISION 2030’ 프로젝트를 통해 그린수소를 그린암모니아로 전환해 수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25년 완공을 목표로 네옴(NEOM) 신도시에 세계 최대 규모의 그린수소 생산 공장을 짓는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하루 650t의 그린수소와 연간 120만t의 암모니아를 생산하게 된다.
칠레 또한 신재생 에너지 기반의 그린수소 공급 역량이 높은 국가 중 하나로, 풍부한 에너지자원을 바탕으로 수소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 11월 칠레 에너지부(Ministerio de Energia)는 2030년까지 25GW 규모의 전력을 투입하여 1.5달러/kg 가격의 그린수소 생산을 목표로 하는 ‘그린수소 국가전략(Estrategia Nacional Hidrogeno Verde)’를 발표했다. 이러한 그린수소 국가전략을 바탕으로 칠레 북쪽 안토파가스타 지역과 남쪽 마가야네스 지역에서 주요 그린수소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며, 60개가 넘는 관련 프로젝트가 가시화되고 있다.
◇ 나미바아, 그린수소 시장 주도국으로 부상
이 밖에도 1900년대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유명했던 나미비아가 새롭게 떠오르는 그린수소 시장에서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풍부한 일조량과 강한 풍력 에너지를 바탕으로 경제성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프리카 서남단에 자리한 나미비아는 1년 중 300일 동안 강한 햇빛이 내리쬔다. 대서양을 접하고 있어 바람의 세기도 강하다. 그린수소 생산에 필수적인 신재생에너지원이 차고 넘친다.
독일 정부는 나미비아에서 생산된 그린수소가 세계에서 가장 저렴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독일 정부는 나미비아의 그린수소 타당성 조사 및 시범 프로젝트에 4000만유로(약 540억원)를 투자했다. 나미비아는 2025년 이전에 그린수소를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그린수소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나미비아 뤼더리츠시의 기술 매니저는 “첫 번째 다이아몬드 러시는 1900년에 있었다”며 “지금은 그린수소 러시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 재생 에너지 기구(IRENA)에 따르면 세계 수소경제의 급격한 성장은 무역과 국가간 에너지 관계를 교란시키는 중대한 경제적, 지정학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미 30개 이상의 나라와 지역이 국경을 초월한 수소 무역의 상당한 성장을 예고하며 활발한 무역을 계획하고 있다.
국제 재생 에너지 기구는 2050년까지 수소의 30% 이상이 국경을 넘어 거래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현재 천연가스보다 높은 비율이다. 에너지 변환의 지정학적 분석에 따르면 수소의 생산과 활용에 기반한 지정학적 영향의 새로운 중심지가 등장하면서 에너지 무역의 지형이 바뀌고 에너지 관계가 지역화될 예정이다.
[이넷뉴스=김그내 기자] snowcat74@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