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석촌호수 인근 한우와 무가 만난 깊은 한식 '나복집'

셰프 최병준의 일곱 번째 이야기, ‘본질에서 시작된 한 그릇’

2025-11-18     한정은 기자

[이넷뉴스] 서울 잠실 석촌호수 인근의 조용한 골목 끝, 은은한 나무 향이 감도는 한옥형 공간 안에 자리한 ‘나복집’은 단정하고 깊은 한식 한 그릇으로 요즘 미식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곳의 이름 ‘나복(蘿菔)’은 옛말로 ‘무(무우)’를 뜻한다. 한국 밥상의 가장 기본이자 가장 순수한 재료인 무를 중심에 두고, 화려한 기술보다 재료 본연의 맛에 집중하겠다는 철학이 담겼다.

나복집을 이끄는 이는 최병준 셰프다. 그는 오랜 시간 이탈리안 다이닝을 다뤄온 셰프로, ‘콘메(Conme)’, ‘페코리노(Pecorino)’, ‘토스카나(Toscana)’, ‘오스테리아 세콘디(Osteria Secondi)’ 그리고 미국식 이탈리안 ‘제리브라운(Jerry Brown)’등 지금까지 총 여섯 개의 레스토랑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이탈리안 미식 시장에서 확고한 존재감을 쌓아왔다. 그런 그가 일곱 번째로 선보이는 브랜드 ‘나복집’은 생애 첫 한식 프로젝트다.

대표 메뉴인 한우 무국은 국내산 한우와 제철 무를 함께 고아내 완성된다.자극적이지 않지만 깊은 감칠맛이 입안을 천천히 채운다. 최병준 셰프는 오랜 시간 유럽식 조리법으로 맛의 복합성과 농도를 만들어왔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단맛과 감칠맛의 균형, 그리고 맑음으로 승부를 건다.

그는 음식의 본질은 결국 재료의 정직함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나복집의 공간은 그 철학과 닮아 있다. 한옥의 구조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나무의 질감과 낮은 조도의 조명이 어우러진 실내는, 화려함보다 여백이 주는 단정함이 돋보인다. 과하게 꾸미지 않은 공간 속에서 손님은 오롯이 음식에 집중할 수 있고, 식사의 리듬이 차분하게 이어진다.도심 한가운데서도 마음이 고요해지는 식사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 바로 그것이 셰프가 말하는 나복집의 미학이다.

석촌호수 인근이라는 입지도 브랜드의 정체성과 잘 어울린다. 식사 후 호수 산책을 즐기거나 잠시 머물러 여유를 느끼기 좋은 위치 덕분에, 나복집은 자연스레 ‘석촌호수 맛집’으로 불리고 있다.

또한 나복집은 식사뿐 아니라 술 한잔을 곁들이기 좋은 안주 메뉴들도 준비되어 있다. 한우의 담백한 풍미를 살린 한우 차돌수육, 부드럽게 삶은 도야지보쌈, 불향이 매력적인 직화오징어, 그리고 바삭하면서도 속은 촉촉한 나복 빈대떡까지. 정갈한 한식 상차림 사이사이에서 한국 술과 잘 어울리는 메뉴들이 자리해 있다. 따뜻한 국 한 그릇으로 시작해, 가볍게 술 한잔으로 마무리하는 여유로운 식사의 흐름이 완성된다. 결국 나복집은 단순한 한식당이 아니라, 셰프가 자신에게 던진 질문 “가장 한국적인 맛은 어디에서 오는가” 에 대한 답이 담긴 공간이다. 한우와 무가 만나 만들어내는 한 그릇의 맑은 국처럼, 그의 첫 한식 실험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울림으로 석촌호수 주변에 번지고 있다.

 

한정은 기자(han@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