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산업 분석 ④] 수소 업계가 ‘소금 동굴’ 주목하는 이유

암염 돔 내부로 물 흘려보내 인공 동굴 조성...비용 저렴하고, 사고 나도 안전 미국 유타주, 2019년부터 소금 동굴 조성 중...”전력 과부족 기간 전기 공급 목적” 유럽도 개발 활발...”한국, 소금 동굴처럼 대규모 저장 시설 조성하기 어려운 여건”

2021-07-23     양원모 기자

[이넷뉴스] 미국 유타(Utah)는 ‘소금의 주(州)’다. 주도(州都) 이름도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다. 직역하면 ‘소금 호수 도시’다. 주변에 그레이트솔트호가 있고, 소금 매장량이 풍부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레이트솔트호는 경기도 면적의 절반(5,180㎢) 크기를 자랑하는 대염호(大鹽湖)다. 유타주는 최근 수소 업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받는다. 수소를 대량으로, 값싸게 저장할 수 있는 소금 동굴 조성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 1,000㎿ 규모 초대형 동굴...은행처럼 원할 때 수소 인출 

지난해 11월 미국 CNBC 방송은 솔트레이트시티 남쪽으로 약 210㎞ 떨어진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돔 모양으로 튀어나온 암염층인 암염 돔(Salt dome)에 수소를 채워 에너지 저장소로 활용하는 ‘첨단 청정에너지 저장고(ACES)’ 이니셔티브다. 2019년부터 미쓰비시 히타치 파워 시스템(MHPS), 매그넘 디벨롭먼트가 추진하는 미일 합작 프로젝트다.

ACES의 목표는 수소 비축이 가능한 소금 동굴을 만들어 1,000메가와트(㎿) 규모의 전력을 생산하는 청정에너지 저장고를 만드는 것이다. 1,000㎿는 약 15만 가구가 1년간 쓸 수 있는 양이다. MHPS에 따르면 ACES는 첫 번째 단계로 2025년까지 15만 메가와트시(㎿h)의 청정에너지 저장량 확보에 나선다. 이는 미국에 설치된 리튬 이온 배터리 총용량의 150배에 달한다.

두 회사가 소금 동굴에 꽂힌 것은 여러 장점 때문이다. 다른 공간보다 저장 비용이 최대 90% 이상 저렴하고, 지하에 조성돼 사고가 일어나도 안전하다. 소금의 화학적 특성 덕에 누출, 훼손 위험도 낮다. 무엇보다 동굴이라는 지리적 장점을 활용해 많은 양의 수소를 한 곳에 저장할 수 있다. 은행처럼 수소를 저장해뒀다가 필요할 때 빼서 쓰는 식이다.

터키 투즐루카 소금 동굴(사진=Pixabay)

◇ 1980년대부터 수소 저장용 활용...”전력 과부족 기간 공급”

에너지 비축용 소금 동굴은 대부분 인공(人工)이다.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소금의 특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암염 돔 내부로 물을 흘려보내면 소금이 녹으며 소금물이 만들어진다. 이를 추출하면 소금 동굴이 되고, 이곳에 기체 형태의 수소를 저장한다. 폴 브라우닝 MHPS 아메리카 최고경영자(CEO)는 “소금 동굴 100개에 저장할 수 있는 수소량은 배터리로 가득 찬 컨테이너 4만개에 채울 수 있는 양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텍사스의 원유 업체 셰브런 필립스 클레멘스 터미널(CPCT)은 1980년대부터 소금 동굴을 수소 저장용으로 활용했다. 세계 5대 정유사 셰브런의 자회사인 CPCT는 소금 동굴에 수소를 액체 형태로 비축해왔다. 지하 850m 지점에 있는 CPCT의 동굴은 지름 49m에 높이가 100m에 달하며, 저장할 수 있는 수소량은 약 2,520t(톤)이다. 이는 평택수소생산기지의 연간 생산량(2,500t)과 맞먹는다.

브라우닝 CEO는 “캘리포니아는 2020년 봄부터 매월 15만~30만 ㎿h씩을 재생 에너지로 대체했다가, 같은 해 여름 폭염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겪었다”며 “ACES는 캘리포니아 정전 사태와 같은 일을 막기 위해 잉여 에너지를 비축해뒀다가 전력 과부족 기간 공급할 목적으로 고안된 프로젝트”라고 CNBC에 말했다.

(사진=Max Pixel)

◇ “한국, 대규모 수소 저장 시설 구축 어려운 여건”

소금 동굴은 수소 외 분야에서도 에너지 저장고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은 전략 비축유(SPR)를 텍사스, 루이지애나주의 4개 도시 지하 1㎞ 밑 소금 동굴에 저장해놓고 비상시 활용하고 있다. 이곳에 보관된 석유량은 약 6억 4,480만 배럴로 추정된다. 이는 미국민이 한 달간 쓸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미국 정부가 마지막으로 SPR을 가져다 쓴 것은 리비아 사태로 원유 공급에 차질이 생겼던 2011년이다.

미국 다음으로 소금 동굴 개발에 적극적인 곳은 유럽이다. 프랑스 가스 업체 테레가(Teréga)와 히드로젠 드 프랑스(Hydrogène de france)는 지난해 7월 업무 협약을 맺고, 남서부 누벨아키텐 지역의 한 소금 동굴에서 수소 저장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이곳에는 1년간 1.5기가와트시(GWh) 규모의 수소가 저장될 예정이다. 이는 400가구가 약 1년간 쓸 수 있는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지리적 이유 등으로 개발이 요원한 상황이다. 마틴 탠글러 블룸버그NEF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9월 ‘수소 경제와 한국의 수소 기술’ 웨비나에서 “한국, 일본 등은 소금 동굴처럼 대규모 수소 저장 시설을 구축하기 어려운 여건”이라고 지적했다. 탠글러 연구원은 “수소는 천연가스보다 부피당 밀도가 낮아 저장이 까다롭다”며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정량의 수소를 호주 등에서 수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넷뉴스=양원모 기자] ingodzone@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