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찌꺼기, 바이오 에너지 연료·퇴비로 대변신 中
아메리카노 한 잔 추출 시 약 14g 커피 찌꺼기 발생 연간 15만 t 커피 찌꺼기···대다수 생활쓰레기로 버려져
[이넷뉴스] 하루에 한 잔 이상의 커피는 피로감을 날려주는 휴식처다. 또한 강력한 항산화 성분으로 복부 지방을 줄여주고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되는 고마운 존재다. 뿐만 아니라 커피를 만들고 난 후 찌꺼기는 방향제 역할까지 해 주방의 기름 냄새를 제거하는데 활용하거나 탈취제로 만들어 실내 악취를 없애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생활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주는 커피가 사실 환경에는 그리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쳐왔다. 대량의 쓰레기를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업계의 골칫덩어리였기 때문. 이랬던 커피가 최근에는 친환경 자원으로 변모해 우리 에너지 산업은 물론 농가에까지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착한 쓰레기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 세계 6위 커피 공화국의 민낯
1999년 스타벅스 이대점이 오픈 한 이후 우리나라 커피 산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한 집 건너 한 집이 커피숍일 정도로 급성장을 이뤘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커피전문점 매출액은 약 7조 원으로 2023년에는 9조 원으로까지 시장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20세 이상 성인 인구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약 353잔으로 유럽, 미국, 일본 등에 이어 세계 6위의 커피 소비 국가로 우뚝 올라섰다.
가히 커피 공화국이라는 별칭이 어울릴 정도로 커피 산업은 규모 면에서 커졌지만 덩치에 비해 시스템이나 산업 제도 면에 있어서는 뒤쳐졌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커피를 추출하고 난 뒤 쓰레기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는 관심이 전무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추출할 때마다 생기는 커피 찌꺼기는 약 14그램(g)이다. 커피 추출에 원두의 0.2%만 쓰이고 나머지 99.8%는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 게다가 제대로 된 커피의 맛과 향을 내기 위해서는 한 번 추출된 원두는 재사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렇게 버려진 커피는 곧 쓰레기로 분류돼 생활 쓰레기처럼 매립하거나 소각시킨다. 하지만 매립을 한다 해도 금방 분해되지 않을 뿐 아니라 소각할 때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메탄가스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커피 찌꺼기는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국의 커피전문점 점포 수는 약 8만 3,445개소며 커피를 함께 병행 판매하는 점포 수는 1만 9,390개소로 커피 찌꺼기가 배출되는 장소만 약 10만 개를 넘어선다.
이곳에서 소비되는 원두양만 약 15만 톤이다. 즉, 연간 흘러 나오는 커피 찌꺼기만 해도 어마어마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커피 찌꺼기 발생량은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2012년 9만 3,397톤에서 2019년 14만 9,038톤으로 약 37% 증가했다. 서울에서 나오는 커피 찌꺼기만 해도 하루 평균 140t에 이른다. 이를 연간으로 합산하면 대략 5만 t의 쓰레기가 서울의 커피 전문점에서 배출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커피 찌꺼기 처리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2019년 발생한 커피 찌꺼기 14만 9,038톤이 종량제 봉투에 넣어 배출됐는데 이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만 약 41억 원의 비용이 발생했다.
◇ 커피 찌꺼기, 반환경에서 친환경으로 업그레이드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던 커피 쓰레기가 최근에는 친환경적인 에너지 자원으로 재활용되며 반환경 쓰레기에서 친환경 바이오에너지 연료로 탈바꿈하고 있다.
커피는 중금속 등의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귀중한 자원으로 평가 받고 있다. 커피 찌꺼기는 유기물 함량이 평균 36.1% 수준으로 건조한 상태에서 바이오 원유를 생산하는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바이오 원유는 나무 톱밥이나 풀과 같은 바이오매스를 급속 열분해해 증기로 만들고 이를 냉각시켜 만든 액체연료다. 석유를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로써 원재료를 쉽게 얻을 수 있고 저장과 운반이 편리한 데다 환경오염이 적어 친환경 재생에너지원으로 주목 받고 있지만 그 동안 톱밥 가격이 비싸 생산효율성이 떨어져 활발히 상용화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커피 찌꺼기는 발열성이 높고 유용한 화합물을 함유하고 있어 바이오 원유로 적합하다. 실제 커피 찌꺼기는 킬로그램(kg)당 발열량이 5,648.7키로칼로리(kcal)로 나무껍질의 kg당 발열량 2,827.9kcal의 약 2배에 해당한다.
게다가 커피 찌꺼기를 원료로 한 바이오 원유는 일산화탄소 배출량이 적고 다양한 고체 및 액체 바이오의 연료 형태로 가공이 가능해 활용도가 매우 높다.
이 같은 커피 찌꺼기의 장점을 활용해 영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일본, 미국 등 일부 선진국들은 커피 찌꺼기를 바이오 에너지원으로 이용하고 있고 커피콩의 껍질을 자동차 부품으로 변모시키는 등 다각도로 활용하고 있다.
일례로 영국 런던의 경우 커피 찌꺼기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 모델을 구축했다. 커피전문점에서 커피 찌꺼기를 배출하면 스타트업 회사가 수거해 생산기관으로 전달하는 것. 이렇게 전달된 커피 찌꺼기는 숯이나 펠렛, 디젤 등으로 다시 태어난다.
스위스의 경우에도 폐기물 관련 규제 강도가 매우 높아 일찌감치 커피 찌꺼기 매립량을 줄이기 위한 시스템이 뿌리 내렸다. 커피 찌꺼기를 펠렛 형태로 제조 후 제품 생산 공정에 이용되는 보일러의 열원으로 사용하는 등의 재생산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에스토니아의 경우 커피 전문기업과 친환경 에너지기업이 힘을 모아 커피 찌꺼기 4.4t을 가지고 약 한 달 동안 다섯 가정에 전력을 공급하며 커피 찌꺼기의 에너지화를 알리기도 했다.
◇ 우리나라 커피 찌꺼기의 변신은 ‘걸음마’
우리나라의 경우 급성장한 커피 산업에 비해 커피 찌꺼기 재생산과 관련해 제도적 장치는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작년 9월 ‘커피 찌꺼기 수거체계 확립을 통한 바이오에너지 연료자원화 방안’ 보고서에서 재활용을 위한 분리, 배출, 수거 체계의 미흡함을 지적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진국에 비해 제대로 된 재활용 시스템이 없어 생활 폐기물로 분류돼 왔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는 한국기계연구원에서 하루에 카페 약 1,000곳에서 배출하는 커피 찌꺼기를 바이오 원유로 바꿀 수 있는 ‘경사 하강식 급속 열분해 반응기’를 개발한 바 있다. 이 생산 설비를 통해 시간당 커피 찌꺼기 200kg을 바이오 원유 약 100kg으로 바꿀 수 있을 정도로 효율성이 높아 많은 관심을 모았다.
최근에는 국내 산업계와 비정부기구(NGO), 커피 전문점을 중심으로 커피 찌꺼기를 활용한 친환경 행보가 한창이다.
대표적으로 스타벅스는 전국 1,300여 매장에서 수거되는 커피 찌꺼기를 천연 비료로 활용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평택의 한 농가에 친환경 커피 퇴비 1만 6,000포대를 전달하기도 했다.
커피 찌꺼기는 식물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질소, 인산, 칼륨 등이 풍부하고 중금속이 없어 병충해를 방지하는데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유기질 함량이 높아 천연 비료로 제격이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현대제철 역시 인천시의 커피 전문점 62곳에서 커피 찌꺼기를 수거해 이를 재자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커피로 인해 발생하는 폐기물량은 줄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여전히 대부분의 커피 폐기물은 매립, 소각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환경에 치명적인 오염물질을 내뿜고 있기 때문이다.
공룡처럼 거대해진 커피 산업 규모만큼 커피 찌꺼기를 순환자원으로서 인정하고 바이오 에너지 순환자원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보다 체계적인 법 규정이 필요한 이유다.
많은 전문가들은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폐기물 매립세가 높고 규제 강도 역시 강하기 때문에 최대한 폐기물을 재활용하려는 움직임에 더 적극적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역시 자원의 재활용을 위해 폐기물 정책을 보다 심도 있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넷뉴스=김범규 기자] beebeekim1111@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