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정부 믿고 투자했는데···ESS 업계는 왜 뿔났나

국내 중소 ESS 제조 업체 대표 30여명, 2월 20일 한국ESS협회 창립총회 개최 REC 가격 하락, 가중치 부여 중단, SOC 상한 등으로 수익성 크게 위축...업계 고사 위기 “우대 정책으로 투자 유도할 땐 언제고, 문제 되니 외면... 생존권 사수 위해 강경 대응할 것” 

2021-03-03     양원모 기자

[이넷뉴스] 고사 위기에 놓인 에너지 저장 장치(ESS) 업계가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각종 우대 정책을 앞세워 ESS 투자를 유도했던 정부가 배터리 폭발 사고 등으로 안전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ESS 업계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재생 에너지 공급 인증서(REC) 가격 하락 등 시장 상황이 나빠진 것도 문제다. 업계는 회원사를 조직해 마땅한 대책이 없을 시 단체 행동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 “산업부 상대로 모든 방법 동원해 저항할 것” 

지난달 20일 국내 중소 ESS 제조 업체 대표 30여명은 서울에서 한국ESS협회(KESSA) 창립총회를 열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협회는 선언문에서 “우리를 파산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를 상대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저항할 것”이라며 “(정부가) ESS 우대 정책으로 (투자자들을) 유혹한 뒤 화재 위험을 빌미로 찬밥 대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초대 협회장에는 정진규 해동이엔씨제6호 대표가 추대됐다. 

업계가 협회까지 만들어 으름장을 놓은 것은 이제 더 물러날 곳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전기산업진흥회가 지난해 11월 ESS 제조·시공·운영 기업 82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수주 현황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60%는 “올해 신규 사업 물량을 확보하지 못했거나, 사업을 포기했다”고 답했다. 전체 기업의 절반이 한 해를 빈손으로 마무리하게 된 것이다. 2020년 추가된 신규 사업장도 2018년(973곳)의 41% 수준인 405곳에 불과했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ESS는 유망 사업군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2018년 이후 ESS 사업장에서 30건에 가까운 화재 사고가 발생하면서 ESS에 대한 우려 분위기가 확산됐다. 정부는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두 차례나 조사를 했지만,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부터 관련 예산 지원이 끊기고, REC에 부여하는 가중치까지 제로(0)가 되면서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이다. 

 

사진=한국ESS협회 제공

◇ REC 가중치 부여 중단·SOC 상한에 수익성 위축

REC 가중치 부여는 일몰제 적용 대상이었다. 일몰제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효력이 사라지는 제도다. 이에 가중치 혜택 중단이 갑작스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시장 상황의 악화로 일몰제의 단계적 축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ESS는 정부가 강조하는 녹색 전환의 필수품으로, 우리나라의 ESS 기술력은 세계 최상위 수준”라며 “일몰제가 아닌 개별 기간제로 현행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ESS 사업장에서 화재 사고가 잇따르자 배터리 충전율(SOC)을 90%에서 80%(옥내 기준, 옥외는 90%)로 제한했다. 충전 가능 용량이 줄자 수익성도 위축됐다. 대부분의 ESS 업체가 산업부 조치 이후 매달 수백만원씩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가 정부의 결정을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며 비판하는 이유다. 

협회는 대정부 선언문에서 “파산 위기에 몰린 사업자들을 위한 특별 보상법을 제정하고, 중앙 통제가 가능한 ESS의 특성을 고려해 발전소 용량 요금(CP)을 즉각 지급해야 한다”며 “사업자들이 가격 폭락으로 팔지 못하고 있는 ESS REC는 손익분기점 수준으로 국가가 매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진규 협회장은 “ESS 사업자는 태양광으로 손해 보는 사업자의 갑절 수준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며 “이런 현상이 이어진다면 태양광 사업자보다 2배 빨리 파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진=플리커

◇ “최소 기본 수익 보장하고, CP 도입 서둘러야” 

시장 상황도 암울하다. 최근 REC 가격은 4만원 안팎을 오가는 상황으로, 이는 4년 전과 비교해 3분의 1 수준이다. REC 가격이 폭락한 건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발전 확대로 공급은 빠르게 늘어났지만, 수요는 더디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태양광·풍력으로 생산한 REC에 5배의 가중치를 부여해 보전해줬는데, 이마저 일몰제로 폐지되면서 수익이 반 토막 난 것이다. 정부는 계통 안정 기여도를 문제 삼아 일몰제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세계 ESS 시장은 꾸준한 성장이 기대된다. 시장 조사 전문 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ESS 시장 규모는 2020년 40.7GWh(기가와트시)에서 2025년 138.5GWh로 3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국내 ESS 시장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 한국전기안전공사에 따르면 2018년 3,756MW(메가와트)로 정점을 찍은 국내 ESS 시장 규모는 2019년 1,799MW, 2020년 1,987MW로 쪼그라들었다. 

정진규 협회장은 “아무 잘못 없이 국가가 권유한 사업에 투자한 국민들이 ESS 사업자라는 이유만으로 파산과 가정 파탄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느냐”며 “국가가 주관한 전력 시장에서 국민들이 투자한 것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누가 국가 정책을 믿고 따르겠는가. 최소 기본 수익을 보장하고, ESS 특수성을 고려한 CP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앞으로 ESS 사업자 권익 보호와 생존권 사수를 위해 강격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넷뉴스=양원모 기자] ingodzone@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