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쉽이 온다] ‘K-조선’이 이끄는 친환경 선박, LNG 추진선

세계 수준의 LNG 추진선 건조 기술 보유 9% 니켈강 적용···극저온탱크 핵심 소재 국산화 가스공사, ‘LNG 벙커링’ 시장 개척 나선다

2021-02-15     정민아 기자

[이넷뉴스] 기후 위기의 시대.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은 ‘친환경’은 해운업계에서도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선박 연료의 황 함유량 상한선 기준을 기존 3.5%에서 0.5%로 대폭 감축하는 강력한 환경규제인 IMO 2020이 시행되면서 친환경 연료 개발 움직임도 가속화되는 추세다.

◇ 친환경 선박 연료의 선두, LNG

대부분의 대형선박이 연료로 사용하는 벙커C유는 연소 과정에서 미세먼지와 산성비의 원인 물질인 황산화물을 배출한다. 벙커C유에 포함된 황산화물은 자동차용 경유의 3,500배에 달하며 대형 크루즈 선박은 차량 500만 대의 배출량에 해당하는 대기오염물질을 내뿜는다.

선박 연료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대두되자 국제해사기구(IMO)는 지난해 ‘IMO 2020’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2020년 1월 1일부터 전 세계 모든 해역을 지나는 선박은 황 함유량 0.5% 미만인 연료를 사용해야만 한다.

세계 첫 친환경 LNG 추진 벌크 외항선 ‘에이치엘 그린호’가 첫 항해에 성공하고 광양 원료부두에서 철광석을 하역하고 있다. (출처: 포스코)

하지만 현재 생산되는 연료의 평균 황 함량은 2.5% 정도. 환경 규제를 피하기 위해 여러 조선사가 배기가스 정화 시스템인 스크러버(scrubber)를 선택했다. 세계적인 선급이자 인증 기관인 DNV GL(노르웨이-독일 선급)에 따르면 스크러버 설치 선박은 2018년 약 400척에서 IMO 2020 시행을 앞뒀던 2019년에는 약 3,000척 이상으로 급증했다. 값싼 벙커C유를 계속 사용하면서 배출가스 규제를 충족할 수 있는 장점 때문이다.

스크러버는 IMO 기준을 맞추기 위해 배기가스 내 황산화물을 알칼리성인 해수를 이용해 씻어낸다. 그런데 대부분의 선박에 설치된 개방형 스크러버는 배기가스를 처리한 해수를 바다에 버리는 시스템이다. 미국과 프랑스, 스페인, 노르웨이 등 유럽 주요 국가에 이어 중동에서도 해양 오염을 우려해 스크러버 설치 선박의 입항을 제한하면서, 결국 조선·해운업계의 대응은 벙커C유를 대체할 친환경 연료를 찾는 쪽으로 무게가 쏠리고 있다.

친환경 연료 중 가장 먼저 주목받은 것은 액화천연가스(LNG)다. LNG는 기존 선박의 연료인 벙커C유에 비해 미세먼지 90%, 황산화물 100%, 질소산화물 80%가량을 줄일 수 있는 것은 물론 연료의 열량도 높은 대표적인 친환경 고효율 에너지다.

LNG는 영하 162도 이하의 초저온을 유지해 액체 상태로 보관해야 하므로 특수 기술이 필요하다. 또한 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LNG 추진선은 기존 선박보다 가격이 비싸고, 연료 탱크도 4배 이상 커 초기 설치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그간 보급에 어려움이 있었다.

최근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업계에서는 장기적인 대안이 될 LNG 추진선 발주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LNG 운반선에 강점을 보였던 한국의 조선업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LNG 추진선 발주는 증가 추세다. 조선·해운 분석 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2019년 LNG 추진 방식의 선박 발주량은 전체 발주량의 17%로 전년보다 10%P 상승했다.

한국 조선업의 기세도 맹렬하다. 2019년 하반기부터 중국에 빼앗겼던 세계 수주량 1위 자리를 탈환했을 뿐 아니라 2019년 연말에는 전 세계 LNG 운반선 건조의 90%를 한국 업체가 맡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지난해 국내 조선사의 LNG 추진선 수주는 129척을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2023년에는 LNG 추진선 수주가 1,500척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출처: KOTRA, 자료: Clarkson, DNV-GL 선급, Lloyd 선급 자료 종합)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KDB산업은행이 공동으로 펴낸 ‘글로벌 친환경 선박기자재 시장동향 및 해외시장 진출전략’ 보고서는 클락슨과 로이드 선급 등의 자료를 종합해 오는 2025년에는 세계 신조발주 선박시장의 60.3%를 LNG 추진선 시장이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2025년은 IMO의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가 시행 예정인 해다.

보고서는 또 LNG 운반선은 2025년까지 최대 1,962척이 건조되고, LNG 벙커링선도 2016년 31만3,000t에서 오는 2030년 320만t으로 10배 이상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 세계를 선도하는 한국의 LNG 추진선

전문가들은 한국의 LNG 추진선 건조 경쟁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한다. 이미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한국의 조선 3사는 모두 독자적인 LNG 연료공급시스템을 구축했을 뿐 아니라 전용 엔진 적용 경험과 노하우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8월 현대중공업그룹은 세계 최초로 LNG 추진 컨테이너선을 건조했다. 이 선박은 싱가포르 이스턴퍼시픽시핑(EPS)사가 발주한 것으로, 길이 366m, 폭 51m, 깊이 29.9m 규모의 1만4,800TEU(1TEU는 20인치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선박이다.

선박에 탑재된 1만2,000m³의 LNG 연료탱크는 1회 충전으로 아시아와 유럽 항로를 왕복 운항할 수 있다. 특히 영하 163도의 환경에서도 우수한 강도와 충격 인성을 유지할 수 있는 9% 니켈강이 주 소재로 적용됐다.

LNG 연료탱크 외에도 LNG 추진선에 필요한 연료공급시스템(FGSS), 이중연료엔진 등의 배치 및 설계를 최적화해 안전성과 컨테이너 적재 효율성도 높였다. 2018년 4월 현대삼호중공업이 EPS사로부터 수주해 건조하고 있는 총 6척의 LNG 추진 컨테이너선은 2022년 3분기까지 모두 인도될 예정이다.

현대삼호중공업이 세계 최초로 건조한 LNG 추진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시운전 모습 (출처: 현대중공업그룹)

지난달 20일에는 포스코의 LNG 추진 원료 전용선(벌크선)인 ‘에이치엘 그린호’가 포스코 광양제철소 원료부두에 도착해 철광석을 하역했다. 그린호는 지난해 12월 목포항에서 호주로 출항해 철광석 18만t을 싣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LNG 연료를 사용하는 대형 벌크선이 해외 운항에 성공한 세계 첫 기록을 남겼다.

그린호는 길이 292m, 폭 45m, 갑판 높이 24.8m로 세계 최대 규모 18만t급 LNG 추진선이다. 포스코는 IMO의 국제적 규제에 앞서 선제적으로 지난 2018년 12월 에이치라인해운과 기존 원료전용선 2척을 LNG 추진선으로 대체하기로 하고 지난해 12월 선박 건조 완료와 명명식을 거친 바 있다.

2척의 친환경 쌍둥이 선박 에이치엘 그린호와 에이치엘 에코호의 설계·제조는 현대삼호중공업이 맡았다. 포스코는 선박 제조에 필요한 후판 전량과 극저온 연료탱크용 9% 니켈강을 공급했다.

9% 니켈강은 과거에는 해외 특정 철강사들만 생산이 가능해 해외 수입에 의존해 왔다. 포스코는 1993년 9% 니켈강 국산화에 처음 성공했다. 그 후 품질 안정화를 거쳐 2007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으며, 최근에는 한국 조선 3사와 협업하여 LNG 연료탱크 기술 개발을 진행해왔다.

이번에 포스코 9% 니켈강이 세계 최초 LNG 추진 대형 벌크선인 그린호에 적용되면서 업계에서는 향후 국내 조선업체의 LNG 추진선 수주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포스코는 또 2013년 세계 최초로 LNG 연료탱크에 사용할 수 있는 극저온용 ‘고망간강’ 개발에 성공했다. 고망간강은 강철에 다량의 망간(10~27%)을 첨가해 고강도, 내마모성, 극저온인성 등 다양한 성능을 특화한 신소재로 9% 니켈강보다 가격이 30% 정도 저렴하고 수급 안정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 에너지신산업 ‘LNG 벙커링’ 동반성장 추진

포스코는 LNG 벙커링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LNG 추진선 도입을 고민하던 해운사에 장기 운송계약으로 안정적인 물동량을 약속하며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LNG 벙커링은 해상에서 LNG 추진선에 연료를 공급하는 시설이다. 포스코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동안 벙커링 인프라 부족은 LNG 추진선 보급의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지난해 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선박이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건조됐다. 바로 LNG 운반과 벙커링 겸용선인 ‘제주 LNG 2호’다.

한국형 화물창 ‘KC-1’ (출처: 한국가스공사)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제주 LNG 2호는 7,500m³의 LNG 탱크 용량을 갖췄다. 특히 한국가스공사와 조선 3사가 2004년부터 10년간 공동 연구를 거쳐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LNG 화물창(KC-1) 기술이 적용돼 눈길을 끌었다. LNG 화물창은 LNG가 담겨 있는 밀폐공간으로, 주름진 스테인리스 스틸(멤브레인)과 보온재로 구성된다.

정부는 2019년 9월 운항을 시작한 LNG 운반선 ‘제주 LNG 1호’, 지난해부터 운영되고 있는 LNG 운반선 및 벙커링 겸용선 ‘제주 LNG 2호’에 이어 2022년 하반기 운영 예정인 LNG 벙커링 전용선 사업이 완료되면 2025년까지 초기 LNG 벙커링 수요에 대한 충분한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LNG 벙커링 수요는 2025년 70만t에서 2030년 136만t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전 세계적인 LNG 벙커링 수요는 2030년 2,000만~3,000만t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리적 특성상 해외에서 구매한 천연가스를 파이프를 통해 수송할 수 없기 때문에 그간 가스공사는 선박을 이용해 LNG를 조달, 수송해왔다. 가스공사는 축적된 LNG 국적선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IMO 2020으로 주목받는 신사업인 LNG 벙커링 분야에 선도적으로 투자해 국내 조선사와 함께 동반성장을 추구한다는 방침이다.

[이넷뉴스=정민아 기자] comte@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