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보급 확대, 사업체는 도산 위기···태양광의 딜레마
매년 줄어드는 국내 태양광 제조업체 탄소인증제 시행···기존 사업자 보호방안은? 양적 확대보다 태양광 생태계 구축 시급
[이넷뉴스] 지난 14일 태양광발전 사업자들이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앞에 모였다. 도산 위기에 처한 기준공 발전소 사업자 등의 구제방안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2017년 12월 정부가 전체 발전량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확대한다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하면서 전국 야산과 농지 등에는 태양광 패널이 빠르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런데 태양광발전 사업자들은 왜 에너지 전환의 ‘수혜자’가 아니라 ‘희생양’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 저가 중국산에 자리 잃은 국내 태양광산업
최근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가 발표한 ‘2019년 신재생에너지 산업 통계’에 따르면 국내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2019년 기준 기업체 수 314개, 고용인원 12,599명, 국내매출 4조6,535억 원, 해외매출 6조441억 원, 투자액 2,500억 원을 기록했다. 국내 신재생에너지 기업체 수는 2018년 385개에서 18.4% 급감했다. 2015년부터 감소세를 이어온 고용인원도 전년 대비 7.9% 줄어들었다.
국내 신재생에너지 산업에서 태양광산업은 고용인원, 매출, 투자 항목 등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2019년 국내 태양광 기업체 수와 고용인원은 전년 대비 각각 4.9%, 2.1% 감소했다. 국내 사업장 매출도 2.4% 뒷걸음질 쳤다.
태양광산업의 해외공장매출은 증가했으나 2018년 급락분을 회복하는 수준에 그쳤다. 투자 역시 전년(7,594억 원) 대비 6분의 1토막이 났던 2018년 1,087억 원에서 두 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2017년 이전 투자액과는 여전히 차이가 크다. 특히 투자액의 경우 총액에서 84.1% 비중을 태양광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태양광산업의 위축이 신재생에너지 업계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는 점을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태양광산업의 세부 항목을 살펴보면 상황은 좀 더 심각하다. 2017년 이후 순차적으로 국내에서 태양광 셀의 원료인 잉곳, 웨이퍼를 제조하는 업체들이 도산했다. 지난해 초에는 국내 최대 폴리실리콘 생산업체인 한화솔루션과 OCI가 사업을 접었다. 거기에 신성이엔지가 증평공장 내 셀 생산을 중단하는 등 태양광 기업들도 태양전지(셀) 생산을 포기하고 있고, 계측기기 등 장비를 다루는 국내 업체도 사라졌다.
국내 업체들의 빈자리는 저가 중국산 제품이 빠르게 잠식해갔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정책에 힘입어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급속하게 늘어났지만, 정부가 태양광 보급에만 치중하면서 국내 태양광산업의 생태계는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태양광 제조업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만 정책 혜택을 보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현행법상 중국산 셀을 수입해 국내에서 단순조립한 모듈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부가가치가 60%를 넘으면 모듈을 국산으로 인정해주는 원산지 규정이 있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태양광 설비의 국산 비율이 80%가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너지공단 및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태양광 모듈에 들어간 국산 셀 점유율은 20%대로 2019년 50%대에서 크게 하락했다. 가격경쟁력에 밀려 실제 국내 태양광업체들은 생산을 포기하거나 해외시장에 사업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한국신재생에너지협회나 한국태양광산업협회 등 관련 협회들도 국내 태양광업체들이 중국산 셀의 가격경쟁력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가능하면 국산을 쓰면 좋다” 정도의 입장 표명으로 정부의 정책을 믿고 에너지 전환의 마중물 역할을 자처하며 시장에 뛰어든 국내 태양광업체들을 도산 위기에서 보호할 수 있을까.
업계에서는 이러한 추세가 이어지면 모듈제조업체도 오래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태양광 모듈을 만드는 기업은 한화큐셀과 LG전자, 현대에너지솔루션 정도다.
◇ 탄소인증제···시행 효과는 ‘글쎄’
아직 경쟁력을 잃지 않은 국내 태양광 셀 제조업체를 지원하는 방안이 절실했지만, 산업부가 “국내 태양광산업계의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겠다”라며 들고나온 것은 태양광 탄소인증제였다.
탄소인증제는 태양광 모듈 제조 전 과정(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셀-모듈)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총량을 계량화(CO₂·kg)하여 관리하는 제도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CFP(Carbon Footprint for Product, 탄소발자국) 제도를 적용 중이며 EU에서도 유사 제도를 도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산업부는 탄소인증제의 국내 시행으로 “국내 기업들이 탄소 배출 량 저감에 대한 경험과 기술 등을 축적해 해외시장 진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밝혔다. 아울러 저탄소 공정시스템 및 고출력·고효율 모듈 개발을 유도해, 제조단가를 절감하고 국내 태양광 모듈의 기술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탄소인증제는 탄소 배출량에 따라 태양광 모듈을 크게 3등급으로 분류한다. 1등급은 1㎾당 670㎏. CO₂ 이하, 2등급은 670㎏ 초과 830㎏. CO₂ 이하, 3등급은 830㎏. CO₂ 초과 등으로 규정한다.
산업부는 탄소 배출량이 적은 제품에 대해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선정 입찰시장 및 정부보급사업 등에서 인센티브를 적용하기 때문에 중국기업들의 저가 공세에 국내 제조사들이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기업들은 대부분 석탄발전으로 셀과 모듈을 생산하기 때문에 탄소인증제가 시행되면 국내 진출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의 태양광발전 사업 진출 독려에 따라 많은 국내 태양광 사업자가 2017년을 전후해 시장에 진출했다는 점이다. 최신 설비를 쓸수록 탄소 배출량이 적다 보니 시장에 일찍 진입한 사업자들은 상대적으로 입찰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지난해 하반기 입찰 당시 탄소인증제 시행 이전 모듈을 사용한 사업자들은 저탄소인증을 받지 못해 모두 최하점수를 받았다. 태양광 사업자들은 정부와 기관이 사업자들과 충분한 소통 없이 갑자기 지난해 하반기에 제도를 시행하면서 혼란을 가중했다는 입장이다.
이에 태양광발전 사업자로 구성된 대한태양광발전사업자협의회(대태협)는 지난 14일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2차 집회를 열고 탄소인증제 시행 철회 등을 촉구했다.
곽영주 협의회대책위원장은 “1만여 태양광 사업자는 정부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믿고 전 재산을 투자했으나 잦은 정책변경, 불공정 경쟁입찰로 대출금마저 갚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지난해 하반기 이전에 설비를 투자한 업체들은 도산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태양광 사업자들은 20년 정도를 바라보고 시장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은데, 정부가 불과 2~3년 만에 정책을 바꿔 사업을 접어야 할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곽 위원장은 또 “탄소인증제 시행에 따라 기존 발전 사업자들의 손실 부분은 정부가 보전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지원금 등에 예산 한계가 있다면 초기 투자자들이 최소한의 원금 보전이라도 할 수 있는 태양광산업 생태계를 만들어 달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 이행률 99.7%의 이면
대태협은 RPS 고정가격 경쟁입찰의 평가내용을 낱낱이 공개해야 하며 공정하고 투명한 입찰이 될 수 있도록 경쟁입찰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가 태양광 발전의 양적 확대에 치중해 수요와 공급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덧붙였다.
태양광 전력 판매가격은 계통한계가격(SMP)과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합쳐 결정된다.
생산 원가에 해당하는 SMP는 액화천연가스(LNG) 거래가에 연동된다. 태양광은 설비 이외에 별도의 원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LNG를 기준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당초 석탄화력, 원자력 등 전력원 중 LNG가 가장 비쌌지만, 최근 LNG 가격이 내려가며 SMP는 지난해 11월에는 2019년 가격의 45% 수준인 kW당 49.65원까지 급락했다.
REC 가격도 하락했다. REC는 정부가 태양광발전 사업자들에게 지원하는 일종의 보조금이다. 발전 규모에 따라 REC 발급을 받은 사업자들은 한국수력원자력, 남동발전 등 전력 발전업체들에 이를 판매해 추가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민간 태양광발전 사업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REC 거래가는 계속 하락세다.
한국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017년 2만1,200여 개였던 태양광발전 사업자는 지난해 12월 기준 6만7,000여 개로 3배 이상 늘어났다. 같은 기간 REC 단가만 놓고 보면 2017년 kW당 104.68원에서 지난해 12월 5분의 1 수준인 29원대로 폭락했다. 그동안 태양광 사업자들은 SMP가 떨어져 공급이 줄어들면 REC 가격이 올라 손실을 메웠지만, 최근 공급이 급증하면서 이런 구조가 무너진 것이다.
태양광 업계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설비를 짓는 데에는 kW당 150만 원이 필요하다. 태양광발전으로 생산된 전력의 현물거래가격은 지난해 말 72원대로 주저앉았다. 태양광 발전설비 수명인 20년을 가동해도 설비 원가조차 회수하기 어렵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토지 구매 비용과 설비 설치를 위한 자금 대출의 이자 비용에 유비·보수비용까지 고려한다면 손실이 불가피하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RPS 이행률은 2012년 도입 첫해 64.7%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99.7%를 기록했다. 하지만 태양광·풍력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려나가겠다는 정부의 방침과 달리 RPS 이행률에서 태양광·풍력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15년 이후 대형발전사들이 바이오혼소를 통해 손쉽게 의무량을 채워왔기 때문이다.
현재 태양광 사업자들은 태양광 공급 과잉으로 경쟁입찰 가격이 현물시장 가격보다 높은 비정상적인 상황에 바이오혼소가 REC 물량을 가져가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산업부는 올해 8%로 계획됐던 발전업체들의 REC 매입 비율을 9%로 늘려 REC 수요를 확대하고,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REC 가격을 끌어올리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REC 가격을 올렸을 경우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오게 된다. 지원금으로 ‘좀비기업’ 양산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한국수력원자력 등 6개 발전공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석탄혼소발전 물량을 줄여야 하며 바이오혼소를 신재생에너지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석탄에 우드팰릿 등 바이오매스를 섞어 전력을 생산하는 바이오혼소는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도 위배되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한편 현물거래가보다 계약조건이 좋은 20년 장기고정거래를 늘리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최근 장기거래가는 kW당 150원으로 현물가격 대비 두 배 이상 높아 관련 계약을 늘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장기거래계약 증가는 현물시장의 수요를 떨어뜨려 REC 거래가를 더욱 낮출 위험도 있다.
물론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용이 기존 화석연료로 전력 생산비용과 동일해지는 시점인 ‘그리드 패러디’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REC 가격 등은 하향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태양광 발전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는 최근 3년간의 급락을 완만한 곡선으로 변화시키는 것 또한 정부의 역할일 것이다.
정부의 약속대로 태양광이 ‘미래 먹거리’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태양광 발전의 양적 확대만큼 질적 향상이 필요하다. 태양광 국산화 80%, RPS 이행률 99.7%, 신재생에너지 설비 연간 목표치 조기 달성... 일차원적인 숫자놀음에 만족하기보다는 국내 태양광 제조업체들과 발전 사업자들이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넷뉴스=정민아 기자] news@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