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모빌리티 산업 분석 ③] 모빌리티 규제 샌드박스, 혹시 규제의 모래사막에 빠지는 건 아닐지

부처 간 관할권 다툼에 휩싸인 모빌리티 규제 샌드박스, 진심으로 혁신을 바란다면 부처의 칸막이부터 치우고 시작해야

2021-01-15     강대호 기자

[이넷뉴스] ‘샌드박스’라는 단어를 종종 접한다. 지난해 말 방영된 드라마 ‘스타트업’에서 주요 배경으로 나온 벤처 인큐베이터 회사의 이름이 ‘샌드박스’고, 유명 유튜버들이 모인 MCN(Multi Channel Network)의 이름도 ‘샌드박스’다. 

샌드박스는 어린이들이 흙장난하며 노는 놀이터를 말한다. 아무런 규칙 없이 마음 맞는 친구들과 어울려 그저 재미있게 노는 그런 곳을 은유하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한 드라마 속 회사와 현실 속 회사의 이름이 샌드박스인 이유는 아마도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 혹은 차별된 유튜브 콘텐츠를 마음껏 펼쳐보라는 의미를 담았을 것이다.

‘규제 샌드박스’라는 용어도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신산업, 신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 서비스를 내놓을 때 일정 기간 동안 기존의 규제를 면제 또는 유예시켜주는 제도를 말한다.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모래 놀이터처럼 규제가 없는 환경을 주고 그 속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한다고 해서 규제 샌드박스라고 부른다.

원래 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영국에서 핀테크 산업 육성을 위해 처음 시작됐으며 이번 정부에서 규제개혁 방안 중 하나로 채택했다. 행정규제기본법, 정보통신융합법, 산업융합촉진법 등 여러 부처의 법률과 규제와 연관이 있어서 국무조정실이 총괄한다. 그리고 과기정통부, 산업부, 중소벤처기업부, 금융위원회 등이 전문 분야에 따라 주무 부처를 맡는다.

샌드박스 (출처:나무위키 )

◇ 국토교통부와 규제 샌드박스

국토교통부도 이번 정부의 역점 사업의 하나인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자기 부처 정책 홍보에 동원했다. 규제 샌드박스의 대상은 기존 법률이나 제도에 명시되지 않은 사업모델이나 기술에 대해 장시간이 소요되는 법 개정을 통한 적용보다는 빠른 검토를 통해 우선 허용하고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 규제하겠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혁신 기술이나 아이디어에 의한 모빌리티 사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국토교통부는 2020년 3월 3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을 소개하며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모빌리티 사업의 신속한 시장 진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규제 샌드박스를 준비 중인 여러 모빌리티 업체를 소개했다.

대표적인 회사로 플랫폼 운송사업을 준비 중인 ‘파파’를 들었다. 이 회사는 기사 포함 렌터카 서비스 모델을 갖고 있는데 원래라면 개정안이 시행되는 1년 후에나 영업할 수 있으나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서 신속히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택시에 기반을 둔 새로운 모빌리티 사업모델도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신속히 허용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특히 마카롱 택시를 운영하는 ‘KST 모빌리티’와 카카오T블루를 준비중인 ‘카카오 모빌리티’의 새로운 진행 상황을 소개했다. 이 업체들은 기존 사업의 확장뿐 아니라 새로운 혁신적인 서비스 모델 출시 방안을 검토 중인데 국토교통부에서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그 활로를 열어주겠다고 한 것이다.

이를 위해 국토교통부는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가 시장에 조속히 출시되고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과기정통부와 협업하여 규제 샌드박스 사전 컨설팅을 실시하고 심의 절차도 빠르게 진행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모빌리티 사업모델은 주로 ICT에 기반한 혁신 기술이니 그 주무 부처인 과기정통부와 협력하겠다는 취지였다. 

모빌리티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사업허가를 받은 파파. (출처: 파파모빌리티)

◇ 규제 샌드박스와 주무 부처 관할권 

국토교통부의 홍보대로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진 모빌리티 규제 샌드박스에 대한 소식이 지난 연말 흘러나왔다. ICT 분야에 포함돼 과기정통부에서 관리하던 모빌리티 관련 규제 샌드박스가 국토교통부 소관으로 넘어간다는 소식이었다. 교통 관련 법을 관장하고 있는 국토부에서 진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규제 샌드박스 특례 분야에 신규 추가되는 '모빌리티' 분야의 주무부처를 국토교통부로 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모빌리티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심사 중이라는 것이었다.

규제 샌드박스에서 모빌리티 분야를 신설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모빌리티 관련 규제 샌드박스 신청이 많아 ICT 분야로 포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모빌리티 규제 샌드박스와 관련해 과기정통부와 국토교통부 간의 의견 충돌이 많아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결국, 아무리 혁신 기술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교통과 관련한 것이기 때문에 국토교통부에서 관할권을 갖게 되었다.

규제 샌드박스에서 주무 부처가 된다는 것은 신청부터 심의 그리고 허가까지 모든 과정에 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ICT에 기반을 둔 과기정통부와 오프라인 교통체계에 기반을 둔 국토교통부는 모빌리티 기술을 보는 관점 혹은 체질부터 다르다. 규제 샌드박스의 공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을 보는 업계 분위기는 어떨까. 모빌리티 관련 스타트업과 벤처기업들의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타다금지법’ 입법화 등 혁신보다 안정을, 변화보다는 택시업계 등 기득권층을 대변해 온 국토교통부가 문재인 정부 규제혁신의 아이콘인 규제 샌드박스의 주무 부처를 맡는 건 맞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무총리 산하 한국행정연구원은 몇 달 동안 모빌리티 스타트업들과 정부의 모빌리티 정책 기획 조정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당시 참석한 스타트업들의 의견은 힘없는 과기정통부나 반대만 하는 국토교통부가 아니라, 국무조정실에서 전체적으로 최종 관리해달라는 것이었지만, 결국 국토교통부가 모빌리티 규제 샌드박스를 맡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되었다.
 
◇ 샌드박스가 혹시 모래사막으로?

국토교통부는 타다금지법으로 차량공유를 택시에 가뒀고, 생활물류법으로 택배 운송 수단을 드론, 승용차, 킥보드 등은 뺀 트럭과 오토바이로 한정했다. 국토교통부가 기득권자 입장에 서서 혁신을 무시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는데 모빌리티 규제 샌드박스의 주무 부처가 된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뻔하지 않을까. 

현재의 규제 샌드박스는 소관 부처가 반대하면 통과 안 되는 구조여서 힘센 부처가 고집을 부리면 어떤 혁신도 불가능하다. 어린이들이 놀이터에서 재미있게 놀 듯이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오직 혁신 기술 개발과 아이디어 도출에 힘써도 모자랄 판에 그나마 펼쳐진 샌드박스가 벗어나지 못할 깊은 모래사막이 되지나 않을지 업계가 걱정하는 이유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초연결 세상에서 우리나라가 뒤처지지 않으려면 안정된 전통을 고집하기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부처 이기주의나 부처 칸막이를 해소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제부터라도 근본 구조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이넷뉴스=강대호 기자] news@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