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불가능, 전기료는 인상? ‘9차 전력계획’ 논란 되는 이유

탈석탄 추진하며 신규 석탄발전 건설은 그대로 LNG발전 확대하며 온실가스 감축·탄소중립 가능한가 에교협 “8차 계획 평가와 반성부터 해야”

2021-01-01     정민아 기자

[이넷뉴스] 지난 28일 산업통상자원부가 확정·공고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각기 다른 입장의 이해관계자 간 갈등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9차 계획을 둘러싼 논란이 눈길을 끄는 것은 원전을 지지하는 에너지 전문가나 시민단체도 탈원전·탈석탄을 촉구하는 환경단체도 각각 반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무엇이 문제일까.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 유튜브 캡처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전력거래소)

◇ 패널 발언 자료도 찬반 토론도 없는 공청회

2020년부터 2034년까지 전력설비 계획 등을 담은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확정됐다. 9차 계획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2년마다 세우는 15년 단위 행정계획인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당초 지난해 9차 계획이 수립되어야 했으나 환경부의 ‘전략환경영향 평가’ 등을 이유로 1년이 지연됐다.

9차 계획에는 신재생에너지 확대, 온실가스 감축, 탄소중립 등 수많은 ‘약속’들이 포함되어 있다. 법으로 정해진 기본적인 계획 수립 기한조차 지키지 않는 정부가 훨씬 힘든 과정과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상기 약속을 지킬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1년이 늦춰진 만큼 공고 과정은 완벽했을까. 지난 24일 열린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는 한 나라의 장기 전력수급계획에 대한 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였음에도 주최 측의 아마추어적인 행태가 계속됐다.

공청회는 주말을 낀 연휴가 시작되는 크리스마스이브라는 보편적이지 않은 날짜로 공지됐고, 한전 남서울본부로 장소를 정했다가 차후 한전아트센터로 변경되었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공청회의 현장 참석은 제한됐다. 한국전력거래소는 12월 18일까지 사전 신청한 사람에 한해 공청회 온라인 참가가 가능하다고 안내했으나, 당일 공청회 시작 후에는 사전 신청 없이도 참가할 수 있다고 말을 바꿨다.

온라인 비대면으로 진행된 공청회다 보니 토론패널들은 화상으로 참석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웨비나와 달리 이번 공청회에서 패널들은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음에도 마스크를 끼고 참여해 음향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더욱 목소리 전달에 문제를 일으켰다.

실시간 채팅을 통해 온라인 참여자들이 “잘 안 들리니 마스크를 벗어달라”고 지속해서 요청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패널들의 주요 발언 등에 대한 자료도 제공되지 않았다. 최종 단계인 전력정책심의회 직전 공청회였지만 찬반 토론이 아닌 사전 접수된 서면질의에 대한 응답 방식으로 진행된 것도 문제의 소지를 남겼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는 산업부의 평가가 무색하게 일각에서는 ‘졸속 공청회’라는 비판이 나왔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 유튜브 캡처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전력거래소)

◇ 석탄발전 7기 예정대로 준공하는 ‘탈석탄화’

산업부는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기본방향으로 ‘미세먼지·온실가스 문제 대응을 위해 석탄발전을 과감하게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건설 중인 석탄발전 7기는 예정대로 준공한다.

탈석탄과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이 공존하는 모순 정도는 무시해주는 ‘과감한’ 탈석탄화. 계획 수립이 1년이나 늦어져 가뜩이나 시선이 곱지 않은 마당에 어떻게 이런 내용을 내놓을 수 있는지 선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게다가 석탄발전소의 가동연한은 30년이다. 지금 신규 석탄발전소를 짓는다는 것은 2050년경까지 석탄발전을 계속하겠다는 의미가 된다.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한 것과 완벽히 위배되는 내용이다.

환경운동연합은 2024년까지 신규 석탄발전이 7기나 더 건설되는 것에 강력히 반발했다. 또한 9차 계획에서 언급한 ‘가동연한을 채워 폐지되는 석탄발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보령 3·4호기는 2023년, 동해화력 1·2호기는 2028~2029년에 가동연한 30년을 채우지만 이번 폐지 석탄발전 목록에는 빠져있기 때문이다.

환경운동연합은 “보령 3·4호기는 사실상 수명 연장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고, 동해화력 1·2호기는 국내산 무연탄 지원 정책의 일환으로 폐지를 피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 탈원전파·원전파 각기 반발만 불러와

환경운동연합은 원전에 대해서도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소극적인 수준의 계획을 내놓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고준위 핵폐기물 포화, 맥스터(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졸속 건설, 원전 안전성 문제 등 산적해 있는 원전 관련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라고 날을 세웠다.

원전지지 관련 단체들도 불만을 표출했다. 원자력국민연대 등 8개 원자력 시민단체는 “정부가 합리적인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의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수력원자력, 두산중공업, 한국전력기술, 한국원자력연구원, 한전원자력연료, 코센, LHE 7개 기업노조로 구성된 노동자 연대단체인 원자력노동조합연대는 공청회 당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원자력노동조합연대는 12월 24일 공청회가 열린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출처: 한국수력원자력노동조합)

원자력노동조합연대는 “탄소중립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현재 전력수요의 2배 이상 전력수요가 발생하고 또한 매년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해야 함에도 이에 대한 대응책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신한울 3·4호기만이 해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9차 계획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전기가격이 얼마나 상승하는가 △탄소중립을 위한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 제한 한도는 얼마인가 △부지와 시행자가 확정된 신한울 3·4호기가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되지 않는 반면, 부지와 시행자가 불확실한 재생에너지 계획이 포함된 이유를 밝힐 것을 공개적으로 질의했다.

◇ 탄소중립은 하는데 LNG발전도 늘린다?

정부는 9차 계획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으나, 폐지되는 석탄발전은 LNG발전으로 보완하며 신재생 변동성 대응을 위한 백업설비로도 LNG발전을 활용하겠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계획이 종료되는 2034년 전원구성(실효용량 기준)에서 가장 많은 비중인 47.3%를 LNG발전이 차지하게 된다.

문제는 LNG 역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라는 점이다. 석탄(22.7%)을 포함하면 전체 전기 생산량에서 화석연료가 70%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된다. 정부가 석탄을 또 다른 화석연료로 대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산업부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반영해 9차 계획에 2030년 기준 전환부문 온실가스 배출 목표치를 1.93억t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연도별 감소 추이 및 속도를 분석하면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는 무리가 있어 환경부는 2025년까지 NDC를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9차 계획에는 관련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늘어난 LNG발전으로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 온실가스 통계’에 따르면 LNG 온실가스 배출량(2002~2018)은 kWh당 362g으로, 매년 평균 5,300만t에 이르는 양을 배출해왔다.

공청회에서도 탄소를 배출하는 LNG발전을 확대하는 것이 탄소중립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왔다. 산업부와 워킹그룹은 “석탄발전 폐지와 신재생 확대에 따라 대체 전원으로서 당분간 LNG발전 확대가 불가피하다”며 “중장기적으로 CCUS(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 그린수소 터빈 등 기술 개발로 탄소 배출을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원믹스 전망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 당당한 ‘모른다’···의문만 남은 9차 계획

전국 61개 대학교수 225명이 가입한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는 지난 22일 성명을 발표하며 9차 계획에 관한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아울러 “2017년 8차 계획의 예측이 지난 3년간의 실적과 대비하여 대부분 틀린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이에 대한 반성과 시정이 없다”며 새로운 계획 수립 전에 지난 계획에 대한 평가부터 하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에교협은 또한 “9차 계획에는 탈원전과 태양광 보급 확대로 인한 비용 추산이 빠져 있어 국민들이 전기요금 인상 폭을 예측조차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보조금, 보조 발전설비 증설·유지·운영, 송배전망 확충, 전력 저장 비용이 담기지 않았다”며 각종 비용도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산업부는 2030년까지 전기요금 인상 폭을 8차 계획 때 내놓은 전망치인 2017년 대비 10.9%로 예상했다. 신재생에너지 확대, 환경비용 반영 등이 전기요금 인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하므로 현시점에서 전기요금이 어느 정도 오를지 정량적으로 예상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9차 계획은 2034년 최대전력수요를 전망하며 분석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난 7차 및 8차 계획과 동일한 전력패널 모형을 활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에너지 업계에서는 전력수요를 너무 낮춰 잡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차, 스마트공장, 스마트시티 등 4차 산업혁명에서 전기가 대전환의 핵심에 있음에도 이번 9차 계획상 전력수요에 구체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견해다.

산업부는 “9차 계획 수립 과정에서 4차 혁명에 따른 전력소비량 영향을 분석·검토했으나, 전력 사용패턴에 대한 예측 불확실성으로 전력 소비량을 최대 전력으로 정량화해 반영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4차 혁명에 따른 전력수요 증감 분석방법론을 개선하고 전문가 의견을 들은 뒤 10차 계획에 해당 내용을 반영하는 방안을 종합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넷뉴스=정민아 기자] news@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