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다가온 핵융합에너지 시대···상용화까지 몇 걸음 남았나
초고온 플라즈마 300초 유지해야 24시간 연속 운전 가능 토카막 연료 ‘삼중수소’, 실증 시 필수 핵융합연, 페타클롭스급 슈퍼컴 ‘KAIROS’ 구축 완료
[이넷뉴스] 최근 우리나라의 초전도 핵융합장치인 ‘KSTAR’가 세계 최초로 1억도 초고온 플라즈마를 20초간 유지하는 데 성공하면서 핵융합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05년 수립된 후 하나씩 목표를 달성해가고 있는 ‘국가 핵융합에너지 개발 기본계획’에 따르면, 2026년 핵융합실증로 ‘K-DEMO’ 개념설계 및 핵심 기술개발이 완료되고 2041년까지 핵융합발전소 건설능력이 확보돼 실제 전기 생산이 가능해진다.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핵융합에너지. 한 발 앞으로 다가온 상용화까지 남은 과제와 가능성을 점검해본다.
◇ 과학 실증을 넘어 기술 실증으로
지난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이 독립연구기관으로의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지난 4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부설기관이었던 국가핵융합연구소를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으로 승격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변경 설립된 것이다. 초대 원장은 기존 국가핵융합연구소 소장이었던 유석재 책임연구원이 선임됐다.
유석재 원장은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진행된 비대면 취임식에서 “대외적으로 글로벌 탄소 중립화 대응에 따른 에너지 전환정책과 한국판 뉴딜 정책에 부합하는 청정하고 안전한 미래 에너지원 확보 대안으로 핵융합에너지 개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독립법인 연구원 승격과 함께 기초원천 연구개발(R&D)에서 실증을 위한 핵심기술 R&D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핵융합 전문 연구기관이 설립되면서 핵융합에너지 실증을 위한 핵심기술 연구개발도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 초고온 플라즈마 ‘300초 연속 운전’ 달성해야
핵융합에너지 상용화의 필수조건은 24시간 연속 운전이다. 최근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의 핵융합장치인 KSTAR는 1억도 초고온 플라즈마 운전 20초간 유지에 성공하면서 인류 핵융합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는 KSTAR가 갖고 있던 기존 세계 기록인 8초를 2배 이상 연장한 성과다.
KSTAR는 우리나라 고난도 과학기술이 집약된 토카막 방식의 초전도 핵융합장치다.
지구에서 태양과 같은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려면 태양 중심 온도(1,500만도)의 7배에 달하는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이온온도 기준) 상태를 만들어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KSTAR는 영하 269도에 달하는 극저온의 초고진공 상태를 구현해냈다.
그런데 토카막 내외부의 커다란 온도·압력 차이는 플라즈마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따라서 토카막 경계면을 따라 ‘플라스마 경계면 불안정모드(ELM: Edge-Localized Mode)’가 나타나게 된다. ELM이 발생하면 열 손실이 일어나 효율이 떨어질 뿐 아니라 토카막 내벽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KSTAR는 핵융합의 난제로 손꼽히던 ELM을 2011년 해결했다.
또한 외부에 에너지 장벽(transport barrier)을 형성해 고성능의 플라즈마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플라즈마의 성능을 증가시키는 ‘고성능 플라즈마 운전(H-모드)’을 초전도 핵융합장치 최초로 달성했다. 이어 내부에 플라즈마 장벽을 생성시켜 플라즈마 성능을 H-모드 이상으로 확장하는 기술인 ‘내부수송장벽 모드(ITB 모드)’ 운전에 성공하면서, KSTAR는 2018년 초전도 토카막장치에서 세계 처음으로 플라즈마 이온온도 1억도에 도달했다.
연구원은 앞으로 1억도 초고온 플라즈마의 연속운전 시간을 내년 30초, 2023년 50초, 2024년 100초로 연장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KSTAR의 최종 목표는 2025년까지 300초 연속운전을 달성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300초 연속 운전이 이뤄진다면 KSTAR를 24시간 가동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내년 중 디버터(플라스마에서 발생한 열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장치)가 기존 탄소 소재에서 더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는 텅스텐으로 교체된다. 연구원은 또한 핵융합 반응 입자 수의 밀도 향상 등 초고온 플라즈마 운전 한계를 넘기 위한 연구개발을 지속할 예정이다.
◇ 발전출력 높은 삼중수소···아직 생산 못 해
하지만 1억도 초고온 플라즈마 300초 연속 운전에 성공한다고 해서 핵융합 발전이 바로 상용화되는 것은 아니다.
초고온 플라즈마를 만들기 위한 연료로는 원자핵 속에 중성자가 1개 존재하는 중수소나 2개 들어 있는 삼중수소가 쓰인다. 이들을 연료로 수소 원자핵 2개가 충돌해 헬륨 원자핵 1개로 바뀌는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면, 대부분의 수소는 충돌 시 튕겨 나간다. 그런데 중수소와 비교해 삼중수소는 융합 빈도가 1,000배 높다. 즉 같은 조건에서 삼중수소가 중수소보다 1,000배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핵융합 발전을 위한 1억도 초고온 플라즈마 ‘환경’을 만들어 연속 운전하는 ‘기술’에는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문제는 대규모 핵융합 발전에 필요한 ‘연료’인 삼중수소 생산기술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바닷물에 풍부한 중수소와 달리 삼중수소는 자연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데, 실제 발전 단계부터는 삼중수소가 필요하다. 국제공동 핵융합실험로 건설운영사업인 ‘ITER’에 따르면 800MW급 핵융합 발전소 1개를 하루 가동하는데 300g의 삼중수소가 소요된다.
전 세계에서 아직 삼중수소 생산에 성공한 나라는 없다. ITER가 2020년대 후반경 삼중수소 생산장치인 ‘테스트 블랭킷 모듈(Test Blanket Modules)’을 활용한 공동연구를 진행할 예정이고, 비슷한 시기에 핵융합 선진국들도 독자적인 연구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역시 2025년부터 ‘리튬 브리딩 블랭킷(Lithium breeding blanket)’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리튬 브리딩 블랭킷은 입자가속기를 둘러싼 금속박으로, 입자가속기에서 튀어나오는 중성자가 금속박의 리튬과 충돌할 때 핵반응을 통해 삼중수소를 만드는 장치이다. 향후 핵융합 발전이 상용화될 때에는 리튬 브리딩 블랭킷이 핵융합 반응으로 발생하는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핵심적인 역할도 맡게 된다.
◇ 30년 안에 ‘인공태양’으로 실제 전기 생산한다
2025년 완공 예정인 ITER는 2037년까지 운영돼 대규모 핵융합 발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검증할 계획이다. 이후 2040년대에는 나라별로 핵융합 상용 여부를 검증할 핵융합실증로를 건설하고 실제 전기 생산에 돌입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2035년까지 삼중수소 생산 기술을 확보해 한국형 핵융합실증로 ‘K-DEMO’ 가동에 나설 예정이다.
지난 8월에는 슈퍼컴퓨터 ‘카이로스(KAIROS)’를 구축해 핵융합 연구를 위한 소프트 파워를 확보했다. 1페타클롭스(PF: 1초당 1000조번 연산하는 속도)급 슈퍼컴퓨터인 KAIROS는 데스크톱 PC(인텔 CPU i7-9700K, 460GFs) 3,300대의 계산 성능을 지녔다.
핵융합 장치에서 이루어지는 플라즈마 발생 실험은 엄청난 데이터를 양산하며,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시뮬레이션은 계속 반복된다. 실제 1억도 초고온 플라즈마 20초 연속 운전 기록은 2020년 캠페인 25,860번째 실험에서 달성됐다. 따라서 핵융합 연구에서는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분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정 분야 연구용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KAIROS는 현재 토카막의 장애를 예측하고 불안정성을 제어하기 위한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연구원은 KSTAR 실험뿐 아니라 향후 K-DEMO의 효율 향상 연구에도 카이로스를 활용할 계획이다.
[이넷뉴스=정민아 기자] ews@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