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법 추진 움직임 '꿈틀'...삼성생명에겐 호재?
원가를 시가로 바꾼다 20조 원 규모의 삼성전자 주식 쏟아내나
[이넷뉴스] 국회가 이른바 ‘삼성생명법’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삼성그룹 전체와 삼성전자 주주 등이 긴장하고 있다. 삼성생명법은 보험사의 계열사 지분 한도 기준을 원가에서 시가로 바꾸는 법안이다.
삼성생명법은 이전 국회에서도 여러 번 논의됐지만 야당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21대 국회는 다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더불어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삼성생명법을 통과시킬 가능성이 이전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해당 법안은 더불어민주당의 박용진 의원과 이용우 의원이 발의해놓은 상태다.
박용진 의원은 “삼성생명의 총자산 대비 주식 보유 비중은 14%에 이른다”며 “다른 보험사는 0.7% 수준으로 삼성생명은 보유한 주식에 충격이 오면 다른 보험사보다 20배 이상의 충격을 받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삼성생명법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은 위원장은 “원가가 맞느냐, 시가가 맞느냐 한다면 시가로 계산해 위험성을 파악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삼성생명법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삼성전자 주주, 삼성생명 보험 계약자 등의 이해관계가 두루 얽혀 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입법 과정에서 삼성생명법이 미칠 영향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통과시킨다면 향후 비판의 목소리가 거셀 것”이라고 말했다.
◇ 삼성생명법이 주식 시장에 미칠 영향
삼성생명법은 ‘금산분리(금융 자본과 산업 자본의 분리)’ 주장이 거세지면서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현행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계열사의 채권이나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한도를 자기 자본의 60% 또는 총자산의 3%로 규정하고 있다. 자기 자본 60%가 총자산 3%보다 크다면 총자산 3%를 적용한다. 보험사가 투자 손실을 보면 고객에게 손실이 전이될 수 있기 때문에 계열사 지분 보유에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이다.
유독 보험사만 취득원가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법안 개정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 사태를 겪은 뒤 대부분 기업의 회계처리를 모두 시가로 평가하도록 개정한 바 있다.
문제는 삼성생명법이 통과될 경우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대량 매매해야 한다는 점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주식을 최초로 취득한 시점은 1980년 이전으로 당시 삼성전자 주가는 1천원 대였다. 현행 보험업법에 따라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보통주 5억 815만 7,148주(지분 8.51%)를 취득원가로 계산하면 5,447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1분기 말 기준 삼성생명의 총자산(309조 원)의 0.18%에 그쳐 보험업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하지만 삼성생명법이 통과돼 시가 기준으로 변경되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 비중은 급격히 오르게 된다. 삼성전자가 5만 9천 원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은 무려 29조 9,800억 원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삼성생명 총자산의 9.7%를 차지하며 삼성생명은 3%를 제외한 나머지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삼성생명이 매각해야 하는 삼성전자 지분은 17조 3천억 원가량으로 삼성전자 시가총액 대비 6.1% 수준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면 주식 시장에 큰 충격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매각 유보 기간을 최대 7년으로 잡는다고 해도 해마다 3조~4조 원 규모의 삼성전자 주식이 쏟아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주식 시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국내 기관 또는 해외 사모펀드에 넘기는 방안도 거론된다. 하지만 20조 원 규모의 주식을 받아줄 여력이 있는 국내 기관이 없고 반도체 등 국가 안보 관련 기업의 지분을 해외 자본에 매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방안들은 어려울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주식 시장에 내다 파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삼성생명법, 삼성생명에겐 호재?
전문가들은 삼성생명법 통과가 삼성생명 주가에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삼성생명법으로 삼성그룹 지배구조가 개편된다고 해도 삼성생명의 생명보험업 내 위상이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른 보험사보다 자산 및 자본 규모가 압도적으로 큰 데다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삼성생명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의 단기 투자 매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바라봤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도 “삼성생명의 시가총액이 삼성전자 지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던 이유는 지배구조 이슈로 지분 매각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이라며 “시장은 지분 매각 후 배당 확대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한 뒤 삼성전자를 대신할 만한 투자처를 찾을 수 있느냐는 삼성생명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물산에 넘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그룹은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삼성생명이 빠지면 삼성물산이 지주회사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김기룡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매각한 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매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바라봤다.
[이넷뉴스=이현주 기자] news@enetnews.co.kr